ㆍ6주기 맞아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 출간·추모전 등 잇따라
ㆍ민주주의자·평등주의자·딸바보…옥중으로 보낸 편지도 첫 공개
ㆍ편지 함께 읽기·필사로 ‘연대’…‘따뜻한 장바구니’ 세월호 후원
김근태가 1986년 8월30일 옥중에서 인재근에게 보낸 편지. 알마 제공
2011년 10월15일 가을비가 장맛비처럼 세차게 내렸다. 김근태는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길을 헤맸다.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겼다. 의사는 파킨슨병 징후라고 했다. 김근태는 11월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했다. 딸 병민의 결혼식 열흘 전이다. 그는 12월30일 세상을 떠났다. 장례가 끝난 뒤 김근태 아내 인재근이 딸에게 청첩장과 두 번 접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김근태가 입원할 때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다.
‘서로의 건강과 이웃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라’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서로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여라’. 김근태가 주례를 설 때마다 가지고 다녔던 메모다. 딸을 위해 준비한 주례사이기도 했다. 병민은 “ ‘딸 바보’였던 아빠가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사연은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알마)에 나온다. 김근태가 감옥살이 할 때 가족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인재근이 김근태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 공개됐다. 책을 엮은 병민이 아버지를 기리며 쓴 글도 더했다.
콜트콜텍과 파인텍 노동자, 궁중족발 주인 부부·연대자들이 김근태·인재근 두 사람의 편지를 읽는 행위를 영상화한 리슨투더시티의 <끝나지 않은 편지 : 무릎꿇고 사느니 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김종목 기자
오는 30일은 ‘민주주의자 김근태’(1947~2011)의 6주기다. 추모전 ‘따뜻한 밥상’도 열리고 있다. 김근태를 기리는 출판과 전시를 묶는 공통 매체는 ‘감옥 편지’다.
책에선 민주주의자이자 평등주의자, ‘딸바보’에 연애 지상주의자인 김근태를 볼 수 있다. 김근태가 염색공장 보일러공으로 일하던 1978년 5월16일 인재근에게 보낸 편지 구절이다. “그냥 날아오르는 기분. 나무도 좋고 산도 좋고 사람도 좋고 여자도 좋고, 좋을시고. 약간 술에 취하고 또 옥순이한테 취해서 옥순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을 때. 내 심장 마구 푸드덕거리지 않겠어. 참 떨리더구만.” 동일방직 사건으로 수배 중이던 인재근은 ‘옥순’이란 가명을 썼다. 8일 뒤 인재근에게 쓴 편지엔 이런 내용이 들었다.
“이 사회에서 여자는 피소유물이고 남자는 소유주인 것이 여러 가지로 입증되고 있지. 이와 같은 부당한 제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우리는 누구도 우리를 지배하도록(그것이 사랑이라는 미명하에서든지 또 어떤 다른 명분, 예컨대 온정, 도움이라는 가면을 갖고서든지) 할 수는 없고, 동시에 마찬가지의 엄격함을 갖고 다른 사람을 지배해서도 안되지. 그런 것들을 용납할 수 없어.” 김근태는 일찌감치 남녀 차별과 평등을 고민하고 공부한 이였다. 그는 1991년 5월 병민과 아들 병준에게 보낸 편지에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뚤어진 생각이나 거짓에 따른 남녀차별, 남성 우월감은 남자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썼다.
1978년 김근태와 인재근이 결혼 약속 기념으로 찍은 사진. 알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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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가 1992년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서울 수유리 집에서 딸 병민·아들 병준과 함께 있는 모습. 알마 제공
김근태는 “때로 생활 때문에 절망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여전히 정직하고 성실한 99%의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 거짓에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는 오늘도 희망을 건져 올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가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묵묵히 일한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