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진술했지만 묵살…고문 경찰은 무혐의
“이근안 기소유예 처분 탓에 10년간 도피해”
“피해자 사과 및 안보수사조정권 폐지 권고”
【남양주=뉴시스】김인철 기자 = 故 김근태 전 의원 3주기인 2014년 12월27일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묘지. 2014.12.27
과거 검찰이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던 김근태 전 의원으로부터 고문 사실을 듣고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의원을 고문한 이근안씨가 10년간 도피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검찰의 부족한 수사 의지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는 11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조사단)으로부터 ‘김근태 고문 은폐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심의한 결과를 공개했다.
과거사위 등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1985년 9월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강제연행 돼 23일간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검찰에 송치된 후 이런 사실을 폭로했지만 검찰은 이를 묵살하고 고문 경찰관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특히 검찰은 당시 안기부 등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을 통해 고문 사건 은폐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수립된 대책은 검찰과 법원에서 실제로 시행됐다는 게 이번 조사 결과다.
1985년 11월 서울지검 공안부가 작성한 ‘고문 및 용공조작시비에 대한 대응 논리’에는 검찰의 은폐 협조 과정이 드러난다. 이 문건에는 ‘동인(김근태)이 앞으로 가족이나 변호인들을 만날 때 수사기관에서의 고문사실을 왜곡 주장할 가능성이 있음’이라는 문장이 담겼다.
김 전 의원이 구치소 접견 온 변호사에게 전기고문의 흔적인 발뒤꿈치에서 떨어진 상처 딱지를 전달하려던 시도도 이런 상황 속에서 무산됐다. 고문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장문의 탄원서는 검찰에 의해 재판기록에서 장기간 누락되기도 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이 고문 경찰관들에 대한 수사 의지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김 전 의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후인 1986년 12월께부터 관련 조사가 진행된 점, 고문 경찰관들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 등이 판단 배경이다.
이와 함께 또 다른 고문 피해자가 72일간 영장 없는 불법 감금을 당한 사건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원래 간첩 등 죄 조사에는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는 등 이유로 이근안씨 등에게 기소 유예 처분을 내린 점도 함께 고려됐다.
이에 대해 과거사위는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수사, 검찰의 수사 및 기소, 법원의 재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이미 ‘민청련 조직 와해’와 ‘관련자 엄단’을 의도했던 안기부의 계획에 따라 진행됐다”라며 검찰의 사과를 권고했다.
아울러 대통령령인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정보기관의 ‘안보수사조정권’을 폐지할 것도 주문했다.
과거사위는 “기소 여부의 결정은 검찰권의 핵심적 내용이다. 정보기관이 검찰의 공소권을 통제하는 규정은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에 저촉되는 것이며 이를 검찰이 용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한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해당 규정은 대통령령이므로 국회의결 등의 절차 없이 현 정부의 의지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