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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14년 전 ‘한국판 뉴딜’ 선언 김근태… 그의 실패에서 배운다

  • 김근태재단2020.06.15

14년 전 ‘한국판 뉴딜’ 선언 김근태… 그의 실패에서 배운다

[주장] 한국판 뉴딜 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

2020년 코로나19로 촉발된 첫번째 담론을 꼽으라고 하면 ‘한국판 뉴딜’이다. 처음 생겨난 단어는 아니다. 14년 전인 2006년 7월 30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의장 고 김근태 의원이 ‘한국판 뉴딜’을 선언하고 추진해 월간 <말> 표지를 장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근태식 한국판 뉴딜’은 실패로 끝났다.

2020년 현재로 돌아와 보자. 한국판 뉴딜에 이은 그린뉴딜, 디지털뉴딜, 소프트뉴딜 등 뉴딜이 풍성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간과되고 있다. 뉴딜의 ‘딜(deal)’은 타협이다. 최근 논쟁중인 기본소득과 고용보험도 타협과 타협의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첫 번째 실패

▲ 2006년 9월 월간말 표지

고 김근태 의장의 한국판 뉴딜 출발은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의장선거에서 사회적 대타협을 거론했고 7월에 한국판 뉴딜을 선언하며 타협 주체인 노사정을 만나며 뛰어다녔지만 허사로 끝났다. 2006년 9월 월간말 기사에 의하면 당시 김 의장의 주장은 ‘재계에 경영권 보호를 보장할테니 대신 국내 투자와 신규채용을 확대하고,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고 중소기업과의 거래관행을 개선해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위 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는 성사가능성이 없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일축하고 심지어는 재벌에 대한 항복선언이라는 혹평도 나왔다”고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실현가능성 없다’며 상대조차 않았다.

여기서 필자는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20년 한국판 뉴딜이 2006년 고 김근태 의장이 제기한 재계의 투자와 고용, 거래관행 등 위의 의제들을 피해갈 수 있을지 묻고 싶다. 또한 한국판 뉴딜이라는 지금의 거대담론에서 구체적 의제로 들어가면 노동계와 사용자측이 2006년처럼 냉담한 반응을 하거나 논쟁만 거듭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또한 의문이다.

사회적 대타협 없는 뉴딜은 2006년 한국판 뉴딜처럼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구한다 해도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뭉친 실타래와 같은 주체간의 이해관계를 풀어내지 못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1968년의 핀란드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를 잠깐 보자. 핀란드가 사민주의 국가로 처음부터 복지국가였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핀란드는 1918년 우리의 6.25와 같은 이념내전으로 좌파 사민당이 몰락하고 노조조직률은 겨우 10%대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1931년 핀란드 우파 거두인 스빈후브드 대통령 취임하면서 노조탄압이 본격화되었고, 노조조직률은 6%로 추락했다.

얼마 전 노동분야 전문가 박사와 짧은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양대노총(개인적으로 양대노총을 양소(小)노총으로 부른다. 11% 조직률을 쪼개서 나눠 갖는데 큰 대(大)를 붙일 자격이 없다고 본다)을 하나로 합칠 수 없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이고, 교수님. 그거 남북통일보다 어렵습니다.”

사회적 대타협, 노사정의 주체인 노동계가 11% 조직률, 그것도 양분된 모습으로 어떻게 2700만 노동자를 대표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핀란드 역시 노조조직률이 6%대까지 떨어지고 그나마 하나로 유지하던 노조연맹이 2차대전 직후 둘로 분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정규직 포함 70%대 노조조직률과 함께 노사정 협력의 모범국가이며 복지국가로 전세계 부러움을 사고 있다. 또한 153개국 대상 세계 행복지수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발표한 ‘2020 세계행복보고서’). 그 비결과 전환점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1968년 이뤄진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2020년 한국 총선결과는 1966년 핀란드 총선을 떠올리게 한다. 1966년 핀란드는 200석에서 3/4이 넘는 152석의 중도좌파연정을 구성한 즉시 사회개혁 두 가지를 이뤄냈다. 하나는 교육개혁, 두번째가 사회적 대타협이다. 모두 1968년에 결실을 맺었다.

1968년 개혁을 얘기하려면 케코넨(U. Kekkonnen)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중도파인 농민당(현재의 중앙당) 출신 정치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18년보다 8년이 긴 26년을 장기집권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구사했다.

그는 1966년 구성된 중도좌파연정과 함께 1968년 1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냈다. 또한 양분되어 선명성 경쟁으로 노사분쟁이 끊임없었던 두 개의 노조연맹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와 동시에 정부가 나서서 노조가입을 권유, 당시 30%대 노조조직률을 3년 만에 80%대까지 상승시켰다. 정부가 노조가입을 촉구한다? 우리라면 상상을 못할 일이지만 사회적 합의 틀이 커질수록 소외된 노동자가 없어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단순한 원칙에서 실행한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표성이다. 대표성이 강화되면 책임을 갖고 협상에 임하고 체결된 결과물에 대한 실행력과 구속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노조가입률은 연쇄반응을 가져와 사회적 대타협의 완성도를 높였고 그 결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소련 공산주의 침투와 위협을 막고 핀란드 자유시장경제를 지키는 핵심 장치가 되었다. 현재도 70%대 노조조직률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은 우리나라에서 최근 논의되는 고용보험과 유사한 실업보험 운영을 노조가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남북통일보다 어려울까?

이렇듯 고용보험을 비롯한 최근의 담론들, 그린뉴딜, 디지털뉴딜 등 한국판 뉴딜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모든 담론들의 기반이며 필요충분조건이다. 사회적 대타협이 성공하려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2700만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노’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은 1989년 18.6%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30년 지난 지금 오히려 하락한 11%대이다. 그리고 분열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두 개의 노총 통합이 과연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것일까? 문재인 정부가 핀란드 케코넨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전국고용보험 시행에 앞서 노조가입을 촉구하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조조직률을 올려 실질적 대표성과 구속력을 갖는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이야기일까? 그것이 꿈같은 환상이라면 그린뉴딜로 탈원전하고 탈탄소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꿈 속 잠꼬대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모든 것을 바꾸는 소위 ‘뉴 노멀 라이프’를 가져다 줄 것이다. 핀란드는 했지만 우리는 못한다는 식의 변명은 하지 말자. 1968년 핀란드가 3/4 의석으로 개혁을 이루었고 2020년 대한민국 여당도 3분의 2인 180석을 차지했다. 진보는 온갖 핑계를 동원해가며 현실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누구보다도 빠르게 대응하고 역사의 전환점에서 단 한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06년 고 김근태 의원의 그것은 실패했지만 2020년 ‘한국판 뉴딜’은 반드시 성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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