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입니다. 여러분, 부모님 가슴에 꽃은 달아드리셨는지요? 혹 저처럼 이미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분들은 하루 종일 가슴이 메었겠지요?
저는 어제 잊지 못할 ‘어버이날’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입양가족’들의 어버이날 행사였지요. 사실, 행사라고 하기엔 너무 조촐했습니다. 그저 작은 식사자리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과천 정부청사의 식당 한쪽을 빌려 입양가족들을 초청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대신해 제가 입양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만든 자리였습니다.
초청에 응해준 가족은 모두 57명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가면서 잠깐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이 입양사실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까?” 그런데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는 분들은 모두 ‘공개입양’을 택한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와 부모 모두를 위해 입양사실을 미리 공개하는 편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그런 분들을 만나니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식당은 아이들 웃음과 주고받는 인사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런데 소란스런 분위기가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안고 인사하는 부모님들의 표정도 마치 붕어빵처럼 똑같이 밝고 화사했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한 아이가 부모님께 쓴 편지를 읽었습니다. 짧은 순간인데 벌써 눈자위가 붉어진 어머니들이 눈에 띕니다. 말로 다 못할 그 마음이 전해와 가슴이 먹먹합니다. 다음은 제가 인사할 순서입니다. 막상 일어서니 말문이 막힙니다. 행사를 준비한 직원들이 미리 준비해준 말도 있었고, 제 나름대로 생각해둔 말도 있었지만 느낌을 표현하는 데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결국 세 마디만 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연설 가운데 가장 짧은 연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니 ‘존경합니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자꾸 제 앞자리에 앉은 세진이에게 마음이 쓰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쪽 다리와 한쪽 손이 불편한 아이입니다. 미국으로 입양된 ‘애덤 킹’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세진이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애덤 킹’과 거의 같습니다.
세진이는 의젓하고 씩씩했습니다. 밝고 환한 표정이 잘 어울리는 어린이였습니다. 부모님은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기 집’에 맡겨진 세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입양할 때 세진이는 두발과 세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진이는 걷고, 뛰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피아노도 치고, 자전거도 탑니다. 등산도 했다고 합니다. 세진이를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준 그 부모님께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분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두 번 세 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고가 어디 말로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입양을 결심한 분들의 결단은 정말 숭고한 것입니다. 저는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어버이’라고 믿습니다. 바로 이런 분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5월 11일은 내년부터 시행될 ‘입양의 날’입니다. 본격적으로는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올해는 ‘입양의 날’ 제정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립니다. 입양, 특히 국내입양에 대해서는 아직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국내입양 활성화를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다른 부처와 협의하고 설득하고, 준비할 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서두르겠습니다. 국내 입양 활성화가 유일한 대안입니다. ‘아동 수출국가’라는 말을 더는 듣지 않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십시오.
2005.5.9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