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은 달리는 자동차에 깔리는 충격”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
최근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국가폭력을 당한 모든 피해자 대상
고문방지법 제정운동 등 법제화 활동도
“ 저는 지금도 커튼 치고 이런 거 싫어해요. 바깥이 안 보이는 세상이 싫어요. 불 다 켜놓고 베란다 문 다 열어놓고. 어두우면 잠이 안 와요. 밝아야 편안하고. 지금도 늘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자고, 혼자 있는 거 싫어하고, 격리돼 있는 상황이 너무 싫어요.”(시국사건 관련 50대 여성 고문 피해자)
“고문 이후였어요. 항상 엎드려서 한쪽 다리는 펴고, 한쪽 다리는 구부린 채로 자세를 취해야 잠이 와요. 쭉 펴고 못 잡니다. 언제든 깨면 도망가는 자세로 자게 됐어요. 그래야 잠이 와요.”(50대 남성 고문 피해자)
지난 6월 25일 문을 연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뿐 아니라 부당한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치유를 위한 공간이다. 2011년 12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를 주축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설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1년6개월 후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 전문 민간 치유센터인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숨’이 문을 열었다.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 고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일반인들에게 지나간 과거의 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치유센터 조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군사정권을 지나온 근 100년간 국가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수는 신고한 당사자 수만 30만 명이 넘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 지원위원회나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 국가기구에 의해 조사된 피해자 수만 30만3480명(8560건)으로 집계됐다. 이 숫자도 실제 피해자들의 10%가량만 신고한 것으로 추정되며, 함께 피해를 경험한 가족은 빠진 것이어서 실제 국가폭력 피해자는 수백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김근태 치유센터 설립에 앞장선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이 “한반도 전체가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인권의학연구소가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2011년 실시한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고문 피해자들의 76.5%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으며,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24.4%로 일반인보다 2.4배 높게 나타났다. 고문 피해자들은 피해가 발생한 지 20∼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체화증상(43.2%), 대인관계 적응문제(27.7%), 우울(25.4%), 불안(31.9%), 적대감(27.7%) 등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50대 남성 피해자는 “치과에 가면 물고문과 비슷해서 그때 생각이 난다. 얼굴에 천을 씌우면 물고문 같고, 물리치료 받으면 전기고문 같고. 숨 막히고 숨을 못 쉰다”며 과거의 고문 기억으로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소장은 “광주 민주화운동 피해자 등 법적인 명예회복과 경제적 보상이 이뤄진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와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정신적·심리적인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결코 원래대로 회복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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