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근태 6주기 추모전
이미경 작가의 펜 소묘화. 김근태재단 제공
대통령 아닌 현대 정치인 중에 김근태만큼 사랑받는 이도 없을 것이다. ‘영원한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2011년 12월30일 세상을 뜬 이후 해마다 12월이 되면 그를 기리는 전시회·공연 등이 이어져왔다. 2014년 첫번째 추모전에서 김근태가 가족들에게 보낸 옥중편지, 축구화, 양복, 수첩 등 방대한 유품이 첫선을 보인 이래 그를 기억하는 작업은 김근태가 살았다면 고민했을 화두를 던지는 형태로 진화해왔다.
이부록 작가의 <필사적 필사>. 김근태재단 제공
올해도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김근태를 기리는 세번째 추모전이 열린다. 주제는 ‘따뜻한 밥상’. 세월호 참사의 아픔, 해고 노동자, 재개발의 상처 등을 보듬고 촛불과 연대의 의미를 성찰하는 자리다. “때로 생활 때문에 절망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여전히 정직하고 성실한 99%의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했던 김근태와 맞닿는 맥락이다.
리슨투더시티의 <옥바라지>. 김근태재단 제공
이 중 리슨투더시티의 <옥바라지>는 강력한 ‘현장성’으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리슨투더시티는 한때 김근태도 갇혀 있었던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 인근 ‘옥바라지’ 골목 재개발 반대 운동을 벌이다 탄생한 작가그룹. 이들은 10년째 해고무효 투쟁을 벌여온 콜트콜텍 노동자들, 고공농성 중인 파인텍 노동자들, 강제철거에 반대하다 손가락이 잘린 족발집 사장, 또 이들을 뒷바라지하며 연대하는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비디오로 촬영했다. 화면 속 그들은 30여년 전 김근태와 부인 인재근(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고받은 편지를 찬찬히 읽는다. 어떤 의미에선 섬세한 감성을 지닌 남편보다 더 씩씩했던 인재근은 편지에 자주 ‘훌라송’을 써서 보냈다. “훌라훌라…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훌라훌라” 서러운 이들의 담담한 낭독이 전시장을 울린다.
정정엽 작가와 신동호 시인의 콜라보 작품. 김근태재단 제공
김근태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의 편지도 공개됐다. 이부록 작가의 <필사적 필사>는 관객들이 전시장의 옥중편지를 읽고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적으면 작가가 이를 인두로 새기는 작업이다. 신동호 시인은 정정엽 작가가 꽃그림으로 장식한 오래된 거울에 “그에게 밥상은 ‘일하고 있다’는 진행형이고, 그에게 밥상은 ‘둘러앉는다’는 동사”라고 썼다. 섬세한 펜화로 온기를 전하는 이미경 작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2주에 한번씩 식재료를 전달해온 노란리본공작소의 <따뜻한 장바구니> 등도 눈길을 끈다.
김월식 작가가 김근태가 생전에 쓰던 나무의자를 쪼개고 갈아 ‘민주주의의 불을 밝히는 성냥’으로 만들었다. 김근태재단 제공
김근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꾸린 ‘근태생각회’ 의 행사 장면. 김근태재단 제공
김근태 정신을 예술로 변주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전시기획자인 박계리 홍익대 융합예술연구센터 연구교수와 김근태의 딸인 김병민 김근태재단 기획위원의 공이 크다. 미술사를 전공한 김병민씨는 “아버지는 해외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화집들을 선물해 주셨다. 아버지의 예술적 감수성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29일까지. (02)720-8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