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중 아내-자녀에 보낸 편지… 6주기 맞아 딸이 책으로 펴내
2008년 겨울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생일에 함께 촛불을 끄는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딸 병민 씨, 김 전 고문의 모습(왼쪽부터). 딸 병민 씨는 “다양한 조언이 담긴 아버지의 편지글은 지금도 내게 가장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알마출판사 제공
“걸음걸이가 휘적휘적하게 되었을 것이오. 한두 번쯤 복받쳐 오는 것이 있을 것이고, 필경 이것은 서러움이었을 게요.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1947∼2011)이 감옥에서 아내인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64), 아들딸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모은 신간 ‘젠장 좀 서러워합시다’가 출간됐다. 그간 김 전 고문의 편지글은 간간이 알려졌지만, 인 의원의 편지글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고문의 6주기(30일)에 맞춰 딸 병민 씨(35)가 가족의 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모아 책으로 엮었다.
김 전 고문의 편지에선 두 번에 걸쳐 5년간의 수감 생활 중 가족이 느꼈을 ‘남편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구치소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아내에게 가요 ‘사랑의 미로’를 불러준 이야기를 아들 병준 씨에게 편지로 전하며 떨렸던 심경을 고백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불렀던 이 노래를 유리창을 통해 엄마를 마주 보면서 접견실에서 부르고자 하니깐 마구 떨리는 것 아니겠니. 몇 번 망설이다가 시작했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음정이 불안해지다 틀렸단다.” 또 아빠가 보고 싶다면서 자주 떼를 쓰며 우는 딸에겐 “아빠도 네가 보고 싶어서 달을 쳐다보면서 너를 부르고, 부르고 했단다”는 내용의 편지글로 달랜다.
남편의 옥바라지와 자녀 양육, 민주화 운동 등 세 가지 일을 억척같이 해낸 인 의원 역시 남편 앞에선 강하지만 여린 여자였다. 그는 이사를 앞두고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의 체취가 남아 있는 우리 집을 떠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란 점은 분명하군요. 어제 자꾸 눈물이 나더군요”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또 5년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무조건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작정이었다는 남편을 향해 “당신이 밖에서 계실 때도 항상 갖고 있던 나의 자유를 왜 새삼스럽게 선물로 주겠다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며 단호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
병민 씨는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책은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에게 초점을 맞췄다가보다 묵묵히 그를 옥바라지한 어머니의 글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어머니를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그는 “어머니께서 처음엔 편지글 공개를 창피해하셨다”며 “워킹맘이자 남편의 옥바라지를 훌륭히 해낸 아내로서의 기록이 지닌 의미를 거듭 설득한 끝에 출간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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