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보도] 박종철 숨지고 김근태 고문받은 남영동, 민주주의 기억 장소 돼야

  • 김근태재단2018.01.14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인터뷰

“옛 대공분실을 인권기념관으로!”

청원운동 활발…경찰 대응 주목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남영동 경찰 인권센터 5층에 있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당해 숨진 조사실(509호) 앞에 서 있다. 김 사무국장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민주인사들이 인권센터의 부속품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경찰 인권센터를 인권기념관으로 만들어 시민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1987>을 계기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박종철 열사가 1987년 물고문으로 숨졌던 곳이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가를 고문 취조했던 대공분실은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다. 그러나 박 열사를 추모하려고 혹은 한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를 기억하려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기분에 휩싸인다. 신분증을 내고 연락처를 적어야만 관람이 허용되는 고압적인 절차뿐 아니라 전시 내용에서도 경찰 홍보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자는 운동이 활발하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지난 2일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을 청와대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렸다. 내달 1일까지 진행되는 이 청원에 11일 현재 4800여명이 서명했다. 청원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김학규(52·사진)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지난 9일 남영동 경찰 인권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박종철 열사와 대학 3학년 때 학생운동을 같이 했다.

―왜 국민 청원을 시작했나?“이곳을 돌아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아픈 역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공분실에서 인권센터로 바뀌었다는 것만 자랑할 뿐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 이곳에서 고통받았던 박종철 등 민주인사들은 부속물 취급을 당하고 있다. 박종철 열사의 경우엔 조사실(509호)과 4층 기념전시실이라도 있으나 김근태 전 의원 등은 아예 흔적도 없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군인아파트가 들어서 사라졌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남산 건물도 대부분 훼손됐다. 옛 대공분실만이 유일하게 남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곳인데 이래서는 안 되지 않나.”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이끌다 1985년 9월 잡혀온 김근태 전 의원은 한달 동안 고문기술자 이근안 등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다. 그가 조사받았던 515호실은 물고문용 욕조뿐 아니라 칠성판(전기고문을 위한 침대)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다 치워졌다. 방 안팎 어디에도 ‘김근태’ 이름 석자조차 없다. 고 리영희 선생도 1977년 남영동에서 고초를 당했으나 아무런 안내가 없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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