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년)라는 영화가 있다. 국가안보국의 상원의원 살해사건에 휘말린 노동 변호사가 기지를 발휘해 사건을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을 하기 전에 부산에서 노동 변호사였다. 참여정부 초기에 철도 파업, 화물연대 파업, 조흥은행 파업 대응을 노동 비서관이 아니라 민정수석이 담당했다. 언론은 문재인 민정수석을 ‘왕수석’이라고 불렀다.
문재인 수석은 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1차 파업 때 노조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그러나 얼마 뒤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며 2차 파업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해고됐다. 노-정 관계는 파탄 났다.
영화와는 반대로 노동 변호사가 사건 해결에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실패의 쓰라린 체험을 <문재인의 운명>(2011년)에 기록해 두었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많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으나, 외부 용역 등의 형태로 그 법의 적용을 면탈하려는 움직임을 미리 막지 못했다.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양극화와 비정규직 대책에 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문제를 놓고도 참여정부와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함께 논의하지 못했다. 그 역시 참여정부의 한계로 작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노동존중사회 구현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한 첫출발은 자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자”고 했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가 겪은 실패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31일 열린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사정 대화가 마침내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앞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산입 범위라는 두 개의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의 핵심은 휴일·연장근로수당 중복할증이다. 지난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공개변론을 했다. 이런 문제를 법원의 강제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후진적이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 타협이 이뤄져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보다 노사정이 타협하는 것이 옳다.
노동계는 정부와 국회가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인정하지 않거나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하는 등 ‘개악’을 강행하면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다. 너무 강경하면 안 된다.
세상에 완승은 없다. 양보와 타협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공멸한다. 지금이 기회다.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보다 노동자들에게 더 우호적인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
산업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 대화의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행정부와 입법부가 세상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처방이다.
노사정 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우원식 원내대표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는 대한상의, 한국노총, 경총, 민주노총,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단체를 차례로 방문해 ‘공존과 상생의 해법’을 마련하자고 호소했다. 모든 경제주체 간의 적극적 대화와 소통, 양보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 시절 을지로위원장을 지낸 우원식 원내대표는 “현장에 답이 있고 아픈 곳이 중심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람이다.
그의 이런 주장은 2011년 타계한 김근태 전 의원의 ‘민주적 시장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김근태 전 의원은 “우리 사회의 문제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경제 처방이 저성장과 양극화를 가중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상명 우석대학교 김근태연구소장은 “김근태 전 의원이 살아 있다면 ‘경제 안에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경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 본연의 임무는 경제가 사회에 복무하도록 사회 구성원의 의견을 종합하는 일이다’라고 했을 것”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