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늦으면 기차 바퀴 소리가 들리고 기적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습니다. 이건 당시 본인에게는 큰 위안이었습니다. 바깥 세계를 그 기적 소리에서, 기차 바퀴 소리에서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절망적으로 고립된 나를 밖의 세계와 연결하는 끈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용산역과 서울역을 연결하는 철길은 ‘그곳’ 옆을 지난다. 3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차는 사람들의 몸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감정도 같이 실어 나른다. 하지만 ‘그곳’에 갇힌 청년 김근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차 소리를 듣고 바깥 세계를 상상하는 것뿐. 청춘의 눈을 가리고 고통 속에 가뒀던 ‘그곳’. 기차 소리가 유일한 희망이 됐던 ‘그곳’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영화 ‘1987’의 주된 무대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갔다.
악(惡)은 우연히 탄생하지 않았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이나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다. 이곳은 특히 남영역에서 가까운데, 남영역의 유일한 출구에서 빠져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곧 검은색 벽돌 건물을 찾을 수 있다. 회사 건물과 모텔의 틈에 태연히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서 애먼 청춘들이 고문당했고 죽어갔다.
남영역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대공분실의 흔적은 바로 울타리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담벼락은 철조망을 이고 있다. 철조망 사이로 어두운 대공분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대공분실이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간판을 고쳐 달면서 누구나 이 공간을 찾을 수 있게 됐지만, 독재 정권 시절 억울하게 가족이 붙잡혀 들어간 이들에게는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다.
1990년 김근태 전 의원 고문 현장 검증 당시 대공분실 앞에서 벌어진 시위 모습(왼쪽)과 영화 ‘1987’ 속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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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엔 16개의 취조실이 배치돼 있는데, 크기는 제각각이다. 김근태 전 의원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당했던 515호는 다른 취조실 두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다. 취조실의 구성은 비슷하다. 복도에 전등 스위치가 있어서 취조실 내부에서는 마음대로 불을 끄거나 켜지 못한다. 철문에는 건너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렌즈 구멍이 있는데, 복도 밖에서 취조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었다. 각 출입문 위에는 검은 가림막 뒤에 놓인 카메라가 갇힌 사람을 감시한다.
취조실의 벽은 외부의 빛과 소리를 차단한다. 벽면에는 목재로 된 흡음판이 설치돼 옆 방의 대화를 엿듣기는 힘들지만, 고문으로 인한 비명은 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공포는 극대화되지만, 소통은 이뤄질 수 없는 공간인 셈이다. 또, 고문이 진행될 때 크게 라디오를 틀어놓았다고 한다. 김근태 전 의원은 “인간에게 파괴가 감행되는 이 밤중에 저 시적이고자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취조실 내부에 난 창문은 폭이 한 뼘도 채 되지 않아 어둠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며,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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