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본질은 정치보복이다.” 2009년 4월28일 민주당 어느 정치인의 개인 성명은 정가(政街)를 술렁이게 했다.
당시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조롱의 언어’가 넘쳐났던 시절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을 걱정하며 뒤로 숨느라 바빴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생과 사의 운명을 고민해야 할 만큼 외로운 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변론에 나섰던 인물은 정치인 김근태다. 두 사람은 정치적인 노선도, 삶의 궤적도 달랐다. 하지만 김근태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쏟아졌던 화살을 대신 맞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손해를 봐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실천하는 인물, ‘영원한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1970~1980년대 권력의 독재와 맞섰던 그의 삶에서 수배와 투옥은 일상이었다. 1985년 ‘고문 기술자’ 이근안 경감에게 받았던 고문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전기고문에 대한 기억 때문에 치과 치료도 주저할 정도였다.
정치인 김근태의 삶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다. 정치 전문가들에게 대통령이 될 경험과 자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정치인이라면 대중 앞에서 ‘쇼맨십’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김근태는 그 부분에 소질이 없었다. 대중과 전문가들의 평가가 달랐던 이유다.
그가 2011년 12월30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세상을 떠난 지도 7년여가 흘렀다. 당리당략 앞에서 원칙이 무너지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은 김근태의 빈자리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을 계속 움켜쥐려는 자와 탈환하려는 자는 존재하지만 집권해야 할 이유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 속에 집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비전과 대안이 명확하지 않은 채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정서 덕분에)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 정체(停滯)와 좌절이 찾아올지 모른다.”
2011년 9월 김근태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에 올렸던 글은 2019년 1월 현재의 시점에 누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일까. 청와대와 여당일까, 아니면 야당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