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보도] 문희상 의장, 이인영에게 ‘김근태 잊지마라’ 한 뜻은?

  • 김근태재단2019.05.10

문 의장, “민주주의ㆍ인권 ‘김근태 정신’의 숭고한 뜻 잊지 않을 것”

문희상-김근태, 민주화운동 동지에서 정치권 동료로 함께 길을 걸어와

“아주 외로울 때 어려울 때 김근태 전 의장을 잊지 말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의 손을 잡으며 당부한 말이다.

문 의장은 10일 의장실을 찾은 이 원내대표에게 故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문희상 국회의장(오른쪽)이 10일 오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의 예방을 받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근태 전 의장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5년 6개월에 걸친 2차례의 투옥, 26차례의 체포, 7차례의 구류,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고문 등으로 고되고 아팠던 그의 삶은 우리 현대사를 오롯이 관통하고 있다.

문 의장은 “(김 전 의원은) 반은 나의 스승이다. 여러 정책 쪽에서나 외로울 때 많은 도움을 얻을 것”이라며 “내가 왜 이 자리에서 GT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용성도 겸했으나 높은 이상을 한 번도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간 사람이다. 한국정치에 한 획을 긋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이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문희상-김근태, 서울대서 민주화운동 동지로 활동

1945년생인 문 의장은 김 전 의장보다 두 살 위로 서울대 선배이지만, 민주화운동에 함께 매진한 동지이자 정치권 동료였다.

문 의장은 “서울대 대학 시절 우리는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며 열흘간 단식을 함께 했다”며 “제가 법대 대표로 민족주체성 확립 혈서를 쓸 때도 학형은 함께 있었다”고 김 전 의장을 회고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문희상 상임고문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 의장은 198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 김 전 대통령의 외곽 청년 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중앙회장을 3차례 역임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와 처음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16대부터 20대까지 내리 당선돼 6선 의원으로 국회의장이 됐다. 16대 국회에 재입성하기 전에는 김대중정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 전 의장 역시 1995년 9월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함께 DJ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 제도권 정치에 들어섰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당선(서울 도봉갑)된 뒤 2000년 열린우리당과 2004년 통합민주당 후보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광주경선 당일 아침 돌연 중도 사퇴했다. 사실상 노무현 후보를 밀어 준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2004년 7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 최고위원과 당 의장 등을 지냈다.

문 의장과 김 전 의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창당한 열린우리당에 ‘개혁’을 위해 함께 참여했다. 친노계 ‘맏형’으로 불렸던 문 의장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 하지 않는 김 전 의장과 의기투합할 때가 많았다.

2004년 총선 후 노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라는 열린우리당 총선 공약을 부인하자 김 전 의장은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보자”고 결기를 세웠다. 2006년 당 의장이 된 후에는 사회적 대타협을 내걸고 전경련, 민주노총 등을 연달아 방문하며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경제정책에 대해 당청간 이견차가 생길 때마다 청와대에서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급기야 당시 노 대통령이 2006년 8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김 의장은 “민심을 거스르는 인사”라며 단호히 반대했다.

이후 점차 노무현-김근태 간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문 의장은 화급히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모두가 말을 아껴야 한다. 서로에게 책임을 돌려선 안된다”고 중재역에 나서기도 했다.

2007년 6월 김근태·문희상·정동영 열린우리당 전직 의장들은 “민주평화개혁미래세력의 대통합이 전제되어야만 역사의 진퇴를 건 승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며 열린우리당 탈당을 함께 결행했다. 김 전 의장이 수년째 앓아온 고문후유증 ‘파킨스병’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두 사람은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함께 활동했다.

◇ 문 의장 “김근태 숭고한 뜻 잊지 않아..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 지켜나갈 것”

문 의장은 지난 해 7월 20대국회 후반기 의장 선출에 앞서 ‘근태생각'(김근태의 생각을 나누는 문화예술인 모임) 월례모임에 이례적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의장의 부인 인재근 의원과 그 가족, GT계 후배 의원, 민주화운동 옛 동지들에게 “김근태의 뜻을 기억하면서 의회 정치를 잘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18년 12월29일 서울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김근태 전 의장 7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후 문 의장은 지난 해 12월 29일 김 전 의장의 7주기 추모 미사에도 참석해 추도사에서 “민주화를 향한 당신의 삶은 강인했고 결연했다”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김근태 정신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인간의 존엄이 처참하게 짓밟힌 가장 추악한 어둠 속에서도 온 몸으로 항거했던 비장함은 대한민국 인권의 출발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은 또 “동북아 평화번영의 시대로 나가고 싶어 했던 당신의 꿈과 희망은 우리의 꿈과 희망”이라며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다.

◇ 문 의장, ‘리틀GT’ 이인영과 20대국회 마지막 이끌 책무 맡아

문 의장은 김근태의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를 살갑게 맞았다.

문 의장은 “소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이고 GT(김근태)하고 연결되는 프린스(왕자) 아닌가”라며 “프린스가 즉위한 것이니 초심을 잃지 말라”고도 했다.

‘리틑GT’ ‘GT 분신’이라 불릴 정도로 이념과 철학, 삶의 궤적, 심지어 성품과 사고방식까지 김근태 전 의장을 쏙 빼닮은 이 원내대표에게 GT의 적장자라는 최고의 덕담을 해준 것이다.

또 GT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이어받아 한국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꼭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음을 각인시킨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원내대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으로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 생)의 ‘맏형’이다. DJ의 ‘젊은 피 수혈’로 임종석·우상호 등과 함께 입당했으며, 이후 김근태계의 86그룹 좌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우원식, 설훈, 유은혜 의원 등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GT계 모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핵심이기도 하다. 김 전 의장의 장례식에서는 맏상제 역할을 하며 조문객들을 위로했다.

이 원내대표는 두 차례 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서울시장 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크고 작은 선거를 이끌어 승리를 일궈냈다. 국회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역임하며 야당과 개헌 논의를 이끌었고, 남북경제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한반도평화 문제에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거를 나흘 앞둔 지난 4일 김 전 의장과 민주열사들이 잠들어있는 마석모란공원을 찾았고, 5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문익환 목사님, 김근태 의장님 등 여러 선배님들이 계신 곳에서 총선 승리를 위해 중원(중도)으로 나가겠다고 고백했다”면서 “이인영의 가치를 지키기보다 중원에서 우리의 과제를 성취하겠다고 말씀 올렸다”고 했다.

이 원내대표는 “김대중의 길, 노무현의 길, 김근태의 길 그리고 문재인의 길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통합론자’였다. 변화와 개혁을 위해선 민주개혁세력이 모두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정치적 신념이었다. 그리고 이 신념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훈으로도 남았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 승리를 위해선 민주개혁세력이 분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이 원내대표는 20대 국회 마지막 여당 원내 사령탑으로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를 원활히 뒷받침하고 내년 4월 총선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이었고, 따뜻한 심장을 가졌지만 냉철하고도 합리적인 이성도 겸비했던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잊지 않는다면 이인영의 길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힘이 세다(김근태)’.


원문보기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