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의 봄 ④] 몽땅 부수고 싶던 남영동의 ‘변신’
남영동은 악몽이다.
남편이자 동지인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처참하게 고문당했던 곳,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김근태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그곳이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남편 김근태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주화운동가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억울하게 고초를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비록 지금은 그곳의 고문이 멈췄지만, 고문으로 인해 우리사회에 남겨진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남영동대공분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깊게 새겨진,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의 이름이다.
▲ 양손에 포승줄을 한 채 환하게 웃어보이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딸 병민이가 <근태 서재, 시 소리 숲>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남영동대공분실에 열었다고 한다.
아빠가 고문당했던 515호 조사실에 참혹한 고문의 기억이 아닌, 고문을 극복하고자 한 김근태의 노력을 따뜻한 느낌으로 연출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찾아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남영동대공분실에 찾아갈 수 없었다. 남영동대공분실을 마주하는 일은 나에겐 끔찍한 악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남영동대공분실을 몽땅 부수고 철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상처도 상처였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동안 남영동대공분실을 계속해서 경찰이 관리해왔다는 점이었다. 경찰은 남영동대공분실에서 고문과 인권탄압을 저지른 가해당사자다. 그들이 그곳에서 그 죄악의 건물을 계속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해자가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증거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경찰의 철수를 시도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촛불시민의 염원과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으로 최근 남영동에서 경찰이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비로소 남영동이 온전히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가르치라”
▲ 석방된 뒤 부인 인재근(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함께 소감을 밝히는 김근태
김근태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였다.
당시 나는 김근태의 쾌유를 비는 마음으로 성서를 필사하곤 했다. 그때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 구절이 바로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가르치라”였다. 남영동대공분실의 존재가 꼭 그랬다. 마주하기 버거운 악몽 같은 현실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는 것만이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남영동대공분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거울이다. 경찰이 진정 국민을 위한 경찰, 민주·인권 경찰로 거듭나고자 한다면 남영동대공분실이란 이름의 ‘역사의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 민갑룡 경찰청장의 지휘 아래 일선 경찰관들이 ‘경찰역사 순례길’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안에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탐방을 포함시켰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더 많은 경찰이 남영동을 방문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 널리 알렸으면 한다.
대한민국 인권의 성지, 남영동, 그리고 민주인권기념관
남영동대공분실이 대한민국 인권의 성지가 되길 바란다.
유대인 학살현장인 아우슈비츠를 기념관으로 운영하는 것이 유럽에서 파시즘 정치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강력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이 대한민국, 나아가 아시아에서 아우슈비츠 기념관과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민주인권기념관은 미래 세대에게 과거의 참혹한 실상을 알려주고,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민주인권기념관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가협이 되었으면 한다.
김근태의 고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이 문제가 김근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근태처럼 어딘지 모를 곳으로 연행된 수많은 대학생과 민주인사들의 가족들을 모아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을 결성했다. 자식의 소식을 알기 위해 달려온 어머니들과 함께 남영동으로, 서빙고로, 장안동으로, 남산으로 동분서주했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투쟁하며 연대했다.
민가협이 그랬듯,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이 고문과 국가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연대하며 치유의 길을 걸어 가주길 바란다.
희망의 힘
민주주의자 김근태는 늘 희망을 말했다.
“희망은 힘이 세다, 희망은 믿는 사람에게 먼저 온다.”
엄혹했던 시절,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질 줄, 또 고문의 실상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탄압의 상징, 공포 그 자체였던 남영동에서 경찰이 물러나게 될 줄, 신음과 비명이 서린 대공분실 건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기리는 기념관으로 거듭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희망이 없었다면 오늘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근태가 그랬듯, 희망의 힘을 믿고 함께 걸어왔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다.
김근태를 떠나보내고 다짐했었다.
“김근태가 못다 한 일, 인재근이 마무리 짓겠다. 옥중의 김근태를 대신하며 ‘바깥사람’의 별명을 얻었던 인재근의 진가를 보여주겠다.”
남영동을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 것도, 민주인권기념관을 만든 것도 모두 김근태가 못다 한 일이었다. 하나씩 마무리 지어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희망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연대하며 묵묵히 걸어가겠다고 새롭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