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1. 중앙일보
임시국회를 3~4일 단위로 이어가는 쪼개기 동물국회가 계속되고 있다. ‘무대화·비타협→충돌→고소·고발’의 사이클이 무한 반복중이다. 이 풍경을 보고 정치권에선 의회중심주의 개헌이 대안이라는 말이 나오지만 유권자들은 그런 이론보다 사람을 바꾸자는 감성으로 기울기 쉽다.
동물국회가 쉬는 날마다 공개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1·2호 인재영입이 눈길을 끈 것도 그런 감성을 자극해서다. 발레리나 출신의 척수 장애인 재활학 교수(최혜영·40세), 시각 장애 어머니를 둔 빈곤층 출신의 IT기업 직원(원종건·26세). 이들의 입지전을 요약한 보도자료를 훑는 것만으로 마음이 뭉클했다. 비례대표나 지역구 공천이 유력하다는 말도 나온다.
영입 효과는 그 과정의 불투명성 때문에 극대화됐다. 발표 전날까지 당 최고위원회는 물론 총선기획단 관계자들도 몰랐다. 친문 실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컨셉과 대상을 물색하고 인재영입권을 틀어쥔 이해찬 대표가 승인하면 기자회견 직전에 알리는 방식이다. 대상자 설득엔 의원들도 동원되지만 자기가 만난 사람이 몇 호인지, 누가 다른 후보를 만나는지 알 수 없다.
영입 1·2호가 모두 ‘청년’으로 드러나자 당 청년위원회 등에서 입문을 꿈꿨던 이들은 “우리는 뭐냐”고 토로하지만 그 목소리는 억눌려 있다. ‘스토리 텔링’의 힘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인사(영입)가 깜깜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두 사람이 ‘스토리 텔링’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시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찬주 대장 영입 논란이 전부였던 자유한국당에 비하면 ‘A’다.
그러나 감동이 잦아들고 ‘무엇을 하는 사람을 찾는 거냐’는 물음으로 돌아오면 금세 깊은 공허와 마주치게 된다. 동물국회 탈피가 지상과제라면 대화·성찰·설득·타협·승복 등 인간의 정치를 구현할 경험과 역량을 긴급 수혈해야 하는 게 절실한 처방이다. 하지만 유권자는 물론 민주당 구성원 대다수는 최 교수와 원씨가 그런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지난 30일은 사후 ‘영원한 민주주의자’로 불리는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8주기였다. 반전론자였던 그는 2004년 12월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노무현 대통령을 등지고 찬성 당론을 막으려 했지만 토론 결과에 승복했다. 그의 마지막 보좌관 김원이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표결 뒤에 많이 아파했다”고 기억한다.토론과 경청을 고집하다 정치적 결정을 그르친 일도, 싸우자는 보좌진을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라며 말린 적도 많았다고 한다. 인재를 찾는 민주당의 기준이 ‘스토리’라는 감각의 영역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돌아올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