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만남
지난주에 제네바와 스톡홀름을 방문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총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웨덴을 들렀습니다. 세계화를 앞세우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숨길이 여기저기서 느껴졌습니다. 복지선진국 스웨덴도 예외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안은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화를 ‘다자주의’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국제적인 힘을 형성하고 그 힘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 그에 기초한 분열적인 현재의 국제사회-이대로 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지난 4월 OECD 회의 차 방문했던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제네바와 스톡홀름에서도 공식 일정이 끝난 다음에 입양아들을 만났습니다. 아니, 이제 30대~40대가 됐으니까 ‘입양인’들을 만났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겠습니다. 제가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도리고 책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습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한참이 지나서야 풀렸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날카로웠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느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경제가 발전하고 민주화도 이루고 저출산으로 야단이면서도 지금도 해외로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냐? 자신들을 내보낸 건 전쟁과 가난 때문이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과 월드컵 이후에 입양 보낸 아이들이 커서 질문을 하면 그땐 도대체 뭐라고 답변할거냐?”
두 손을 다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거운 압박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 상황이 오는 게 너무 무섭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솔직히 그건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파탄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도 해마다 1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집니다. 그 가운데 1,700명 정도를 국내에서 입양하고, 2,000명 정도를 수양부모가 맡아 가정위탁 형태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2,300명 정도가 해외로 떠납니다. 이렇게 하고 남는 4,000명은 고아원 등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가정이 세상의 절반을 넘습니다. 소년소녀 가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찬사는 사실상 아동학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보건복지부에 와서야 비로소 그런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즉시 정책적으로 해외입양을 금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지 못하고 결국 고아원에서 자라게 하면서 비록 해외지만 가정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결정을 하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와 비판이 있습니다. 뚜렷한 해법도 없고 해오던 일이니까 당분간 그대로 가자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혜를 짜내고 결단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입양인들과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분위기가 썩 괜찮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그 사회에서 성공했거나 성공해가고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했고, 우리를 이해하고 용서해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줍게 요청했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게 창피하다고 하면서 한국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한글학교’를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 방문 기회를 늘려주고, 세계 한국 입양인 모임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남는 문제는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귓전을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나를 편하게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입양부모를 잘 만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입양인의 상당수는 지금도 그늘에서 살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가 아닌가?”
2005.5.23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