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민 토론기구’에 거는 기대
지난번에 여,야당 지도부를 방문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만 빼고 여,야당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모두 만났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지난 4월 국회 대표연설에서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중요한 언급을 한 바가 있어서 나눌 말씀이 있는데 아직 약속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이번에 정당 대표를 만난 이유는 ‘국민연금’ 때문입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해 공식적인 토론이 지지부진해 직접 정당 지도부를 만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국민연금법 개정은 국가적인 현안 가운데 현안입니다. 저출산 고령화의 위험이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제도를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국민 상당수가 날카로운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연금제도 개혁은 난제 중에 난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싼 공방 때문에 사회적 논쟁이 촉발되고, 정권은 물론 나라가 흔들린 사례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논란은 해묵은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지 벌써 3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국회는 물론이고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가히 ‘국론분열’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었고 또 그만큼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논쟁이 3년이 다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16대 국회에서는 상정만 해놓은 채 결국 16대 국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토론다운 토론 한번 못해보고 자동폐기됐습니다. 17대 국회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년이 넘도록 본격적인 토론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 정치인 출신이기에 ‘정치권’의 어려움을 잘 압니다. 어찌됐건 ‘미래를 대비하자.’는 메시지가 국민연금제도 개혁의 핵심이고, 당장 부담을 늘리는 것 외에 뚜렷한 결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현실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미래의 어려움은 막연한 것인 반면에 ‘당장 더 부담하자.’는 주장을 수용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당장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설득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 꿀 한 그릇보다 당장 엿 한 가락이 더 달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정치를 하다보면 나중 일을 준비하기보다 당장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에 먼저 눈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 개혁은 마냥 미룰 일이 아닙니다. 외국의 경우에도 심지어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을 각오하고서도 연금개혁을 단행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게 미래를 위한 올바른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는 2026년이 되면 바로 초고령사회가 됩니다. 국민연금제도는 이런 위기상황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입니다. 이 엄청난 부담을 후세에 떠넘긴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잿빛’일 수밖에 없습니다. ‘희망을 잃은 사회’가 돼버릴지 모릅니다.
이미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번에 정당 지도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토론의 장을 만들자.’는 데에는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국민들이 함께 참여해 본격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는데 의견을 모은 셈입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여야 국회의원들과 지도부들께서 의견을 모아 결정해야겠지요.
올해는 전국적인 선거가 없는 해입니다. 내년에는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고, 내후년에는 대통령선거, 2008년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연속 선거를 앞둔 정치권에게 국민을 향해 부담을 늘려 달라고 설득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표 떨어질 게 뻔한 주장을 할 정치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래에 큰 재난적 부담이 예견되는 일을 그저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6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범국민 토론기구’를 통해 3년 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끝마쳤으면 좋겠습니다.
2005.6.7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