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실에 꼬마 손님 여럿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 가운데 똘망똘망한 눈매를 가진 한 개구쟁이 녀석이 물었습니다.
"전두환 아저씨랑 친해요?”
갑작스런 질문에 처지가 궁색해졌습니다.
“글쎄, 친하지는 않고…. 서로 생각이 달라서 싸우곤 했지”
간신히 생각해낸 내 대답을 듣자 녀석의 눈매는 호기심으로 더 반짝였습니다.
“그럼, 싸워서 누가 이겼어요?”
“…….”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전두환 아저씨’가 화제라고 합니다. 드라마에도 나오고, 코미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다보니 관심이 생긴 모양입니다.
황당한 질문을 한 이 꼬마 녀석은 아마도 마치 어떤 연예인을 만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연예인 누구랑 친하냐는 식으로 질문을 한 것이겠지요.
제 사무실을 찾아온 꼬마 손님은 모두 아홉 명이었습니다. 연초에 도시락 배달 점검을 나갔다가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또렷하게 얘기하는 소녀를 만났는데, 할머니랑 둘이 어렵게 살면서도 예쁜 꿈을 키워가고 있는 그 소녀가 고마웠습니다.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낮은 목소리로 고민을 얘기하던 그 아이를 보고 ‘그럼, 내가 친구해주겠다’고 덜컥 약속을 했고, ‘친구들과 함께 장관실로 놀러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을 한 것은 도시락 배달을 해야 하는 여름방학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여름철이라 도시락 배달 과정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식중독 걱정을 하다가 그 소녀에게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친구들을 몰고 언제 장관실에 갈 수 있을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녀석이 반 친구 일곱 명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아저씨, 영희(가명입니다)랑은 많이 친해요?”
다른 한 녀석이 또 뚱딴지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친해졌어요?”
“…….”
순간적으로 ‘위기다’ 싶었습니다. ‘김근태 아저씨랑 친하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 친구들을 끌고 왔을 ‘그 아이’의 표정이 몹시 굳어졌습니다. 결국 또 우물쭈물하고 말았습니다.
“응, 무슨 일을 하다가 만났어……”
이런 내 말에 그 소녀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요령부득의 대답이긴 했지만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이었습니다. 남몰래 ‘후유’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비밀을 잘 지키기만 하면 이 소녀와 나눈 우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습니다.
짧지만 유쾌했던 ‘꼬마 손님들 맞이’는 그렇게 ‘비밀’ 하나를 묻어두고 끝이 났습니다.
2005.8.29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