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이 보장되는 사회
‘황기순’이라는 코미디언이 있습니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어떤 라디오 방송을 통해 황기순 씨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알려진 것처럼 황기순 씨는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 도박에 빠졌습니다. 필리핀인가 하는 곳에서 빈털터리 노숙자로 떠돌며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결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 황기순 씨가 요즘 방송에 나와 다시 ‘입담’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필리핀은 잊어주세요’하면서 말입니다.
그런 황기순 씨의 이름을 다시 발견한 것은 결재를 하면서 함께 올라온 보고서를 통해서였습니다. 지난 9월 8일, 바로 그 황기순 씨가 한국뇌성마비복지회를 방문해 휠체어 30대를 기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열흘 동안 전국을 돌며 자선 콘서트를 해서 얻은 수익금이라고 합니다.
그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황기순 씨에 대한 기사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를 상대로 ‘눈물 나는’ 강연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곧 예쁜 학교 선생님과 결혼을 할 거라는 예쁜 소식도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사실, 저는 황기순 씨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성품이 어떤지, 재능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다시는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나락에 떨어졌던 한 사람이 돌아와 이제는 ‘이웃’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고마울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라고 말합니다. ‘무한경쟁의 정글’에 비유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영원히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사업에 한번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 난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가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결과는 참혹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직장인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합니다. 사업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노동조합은 타협 없는 외길 투쟁을 반복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메말라 갑니다.
이런 일들이 ‘무한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쟁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국경 없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너무 한가한 얘기를 한다는 타박을 들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가 꼭 행복하고 바람직한 것일까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외길 수순’인 걸까요?
‘패자부활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패자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패자들’에 대한 부담은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패자부활전이 없는 무한경쟁사회는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뒷덜미를 붙잡고, 우리의 발길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즉, 한번 실패한 사람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게 보호할 수 있는 안전 그물망을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9월 26일 발표한 ‘희망한국 21-함께하는 복지’도 그런 대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번 실패한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고, 실패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의 손을 맞잡아 주기 위해 2009년까지 8조 6천억 원이라는 재원을 투입할 생각입니다.
사실, 8조 6천억 원은 엄청난 돈입니다. 당장 그렇게 큰돈을 국민에게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은 일인지 따져 묻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낡고 구멍 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다시 만드는 일은 한시가 급합니다. 한축으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면서, 다른 한축으로 안전망을 수리하는 일에 당장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시장만능주의’ 또는 ‘시장경배사상’에 대해 분명한 재검토와 보완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가 건강한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데 엄청난 장애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연대와 협력의 질서가 필요합니다. 소수의 ‘승자들’이 다수의 ‘패자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수많은 ‘패자들’이 다시 생산의 현장으로 돌아와 재기하고 또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낯설고 물선 타국에서 자살을 생각했던 황기순 씨가 동료들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고국에 돌아와 이제는 어려운 이웃을 향해 다시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처럼 말입니다.
2005.9.27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