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수준으로 만족할 상황이 아닌데도 성급하게 ‘안전하다’고 말한 점은 국민의 기대치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식품관리 정책’을 혁명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절대적인 안전’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에 맞출 수 있습니다. 핵심은 생산자 중심의 식품관리 정책을 소비자 중심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입니다. 식품에 대한 정책 패러다임(판단 기준)을 ‘증산’에서 ‘안전’으로 바꿔야 합니다.
안전을 관리하는 기관인 식약청이나 또는 어떤 기관이 ‘농장에서 식탁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생산을 지원하는 기관이 덤으로 안전관리까지 담당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식품과 관련된 부처가 7~8개가 됩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중금속, 농약, 동물 항생제 등 위해요소를 강력하게 규제할 수 있는 일관된 관리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고 정부 안에서 의견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환경영향평가를 건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듯이 소비자 안전평가를 생산단계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걱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농민과 어민의 부담이 커질 것입니다.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농사짓고 양식하는 일이 더 까다로워 질 것입니다. 애써 지은 농수산물을 폐기하는 일도 많아질 것입니다. 위생시설이나 냉장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수입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는 통관과정에서 안전성을 확인했지만, 앞으로는 외국에서 생산하는 단계부터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수입업자가 안전을 확인할 책임을 지고,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처벌을 하는 체제로 시급히 바꿔야 합니다. 생산자는 물론이고 유통 상인, 수입업자가 안전성을 동시에 책임지도록 준엄하게 해야 합니다. 식품의 안전성을 책임지지 않으면 엄중한 처벌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데 규제를 강화하면 어쩌란 말이냐?’는 원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생산원가가 올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통상마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부담이 있지만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식품안전’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고 결국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농어민의 부담은 국가와 사회가 나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만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같은 나라는 이미 이런 고민을 해왔습니다. 전에 ‘식품파동’을 겪었고,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소비자 중심의 식품관리 패러다임’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미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지목했습니다.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고, 신뢰가 구축된 나라만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충고했습니다.
식품에 대한 ‘신뢰’는 원초적입니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불거진 ‘식품안전문제’에 대해 한발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2005.10.24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