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끝났습니다. 제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시험’을 치는 셈입니다. 불과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해와 올해 국정감사를 받는 느낌은 참 다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우선 의원석에 앉아 질의를 하던 처지에서 증인석에 앉아 선서를 하고 답변을 하자니 어색했고요, 동네 뒷골목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복지부 업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때는 가끔씩 앞이 암담해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국정감사를 마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쩌면 잔뜩 긴장하고 벼락치기를 한 덕분일 수도 있고, 햇병아리 장관이라고 좀 봐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우선 의원들이 지난해 보다 훨씬 많이 준비했고, 집요했습니다. 좀 봐주는 기색도 없었습니다. 복지부 정책 구석구석에 대해 송곳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미처 몰랐던 ‘허술함’이 드러나 아찔하고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을 치르면서 그동안 깊이 느끼지 못했던 ‘국정감사’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국정감사를 하는 걸까요? 국정감사가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국정감사를 시작하면서 복지부 간부들에게 ‘국민을 향해 답변하고, 설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질문이 쏟아지고, 추궁이 이어지지만 결국은 국민에게 정책 집행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라는 생각을 갖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다행히 복지부 직원들이 제 말뜻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준 것 같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이번 국정감사를 받으면서 국민으로부터 많은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실수가 드러나고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일들이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실수일지 모르지만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일 것입니다. 정책을 기획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국민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적지 않은 개선점이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정감사는 일종의 보약입니다. 공직사회는 ‘국정감사’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 년에 한번씩 ‘국민의 눈높이’라는 특단의 보약을 선물 받는 셈입니다. 행정이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어 집을 짓는 일이라면, 정치는 기초공사를 하는 일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기초를 잘 잡아줘야 튼튼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바닥에 금이 간 곳은 없는지, 썩은 기둥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정감사는 집요하고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공직자들이 한두 달씩 집중적으로 준비해서 떠들썩한 대형 이벤트를 벌이는데도 국정감사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며 진행되기에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묻히고 자극적인 한두 사안만 도드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정감사라는 필터링을 거치면서 국민의 실생활에 직결된 중요한 정책과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야 하는데 그렇게 결론이 나기보다 ‘한탕주의’ ‘선정주의’로 흐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정감사의 내용은 언론이라는 창을 통해 국민에게 비춰집니다. 그런데 한날한시에 모든 정부 부처에 대한 감사를 하다 보니 국민이 꼭 관심을 가져야할 사안이 맥없이 묻혀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국정감사’를 연중무휴로 하면 어떨까요? 입시가 끝난 1월에는 교육위원회, 농사철을 앞둔 2월에는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식중독 사고가 많은 여름을 앞둔 5월에는 보건복지위원회 하는 식으로 한 달씩 돌아가면서 국정감사를 한다면 훨씬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국정감사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한 달씩 돌아가며 각 부처의 살림살이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서 좋고, 공직사회 역시 넉넉한 시간을 갖고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과정이 언론을 통해 투명하게 국민에게 전달되면 공직사회와 국민의 ‘눈높이 차이’도 훨씬 줄어들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2005.10.17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