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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일요일에 쓰는 편지] 다시, ‘희망’에 대하여 ―

  • 김근태재단2005.11.08

다시, ‘희망’에 대하여 ―


경남 사천을 다녀왔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놓인 분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자활사업’을 하는데, 그날 경남에서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 모두 모여 모처럼 허리띠 풀고 ‘한판 논다’는 연락을 받고 길을 나섰습니다. 마음으로 응원도 하고 박수도 치고 싶었습니다.


행사장인 ‘사천공설운동장’에 들어서니 맨 먼저 아주머니 그리고 아저씨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유난히 반갑게 악수하고 좋아하시더군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일상에 지치고, 삶에 지친 그분들이 정부에, 이 나라에 기대하고 희망하는 바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많은 말씀을 나누지 않아도 거칠고 굳은살 박인 손을 맞잡으니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제 가슴 속으로 전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축사를 했습니다. 딱딱하지 않고 편하게 말씀드릴 작정으로 우스개 소리도 좀 섞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짜~안’ 했습니다. 운동장에 앉아있는 분들이 왜 한결같이 그리도 왜소해 보이는지요? 몸집도 유난히 작아 보이고,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요즘 자활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마음고생을 좀 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크지 않으니 이래저래 눈치 볼 일도 많습니다. 예산집행 실적에 비해 자활성과가 미진하다는 ‘눈총’도 받고, 그 바람에 정부 내 예산 심사 과정에서 자활예산을 깎겠다는 방침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없었던 일로 되돌릴 생각이고, 거의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나 자활사업을 돕는 분들이 적잖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자활은 복지부의 여러 사업 가운데서도 가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오죽하면 복지부 직원들이 가장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일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성과를 내기 어려운 사업을 맡으면 개인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우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자활사업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 사회의 부담이 되기보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겠다고 생각하는 이분들이 있는 한 이미 문제를 절반은 해결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기죽지 마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두번, 세번 주눅 들지 마시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축사를 마쳤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장터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행사장 한켠에 잔치판이 열렸습니다. 서툰 솜씨로 떡매를 치고, 또 떡도 만들었습니다. 아이처럼 솜사탕도 사먹으면서 여기저기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쏘다니다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자활사업을 돕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과 고민을 한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예산 삭감 방침에 항의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옛날에 탄압에 맞서 일하던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십년만에 만났는데 당장 큰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괜히 주눅 들어서 힘겹게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당장은 고달프고, 주눅 들고 왜소해 보이지만 이런 몸부림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쓰러지지 않는 팽이처럼 돌아가는 셈이니까요.


그 희망을 하늘만큼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 훌쩍 타넘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005.11.08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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