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관악산을 올랐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입니다. 정부 일을 시작하고는 휴일에도 거의 개인 일정을 잡지 못했습니다. 행사며, 회의를 쫓아 다니다 보면 손가락 사이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주말과 휴일이 스멀스멀 지나가곤 합니다.
제 사무실이 있는 곳이 바로 관악산 자락입니다.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관악산은 장관입니다. 하루하루 새 옷을 갈아입는 산의 현란한 ‘패션쇼’를 지켜보며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산에 한번 오를 여유가 생길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다가 만사 제쳐놓고 등산화를 챙겼습니다. 더 늦으면 이대로 훌쩍 가을산을 떠나보낼 것 같아서요.
가까이서 본 관악산은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스락 바스락’ 잎사귀 소리가 정겨운 하모니로 귀를 간지럽히고, 약간 덜 탈색된 단풍잎은 ‘언제 선홍빛이었냐’는 듯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모처럼 하는 등산이라 그런지 정상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더군요. 북한산에만 있는 줄 알았던 ‘깔딱고개’가 관악산에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깔딱고개’는 어디건 있는 것 같습니다. 정상을 눈앞에 두면 반드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깔딱고개’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도 새로운 질서를 찾아 ‘깔딱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갈등이 있고, 심지어 혼선도 있지만 마치 정상을 눈앞에 두고 ‘깔딱고개’를 오르는 것처럼 분명히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을 것이 확실한 내일을 향해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마치 오랜 지기처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어, 김근태 장관이네!’하며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김치파동이다 뭐다 해서 등산을 하면 따가운 시선 좀 받을 거라고 각오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봐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관악산이 베풀어주는 넉넉함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정상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려갈 일이 아득합니다. ‘저 길을 언제 또 내려가나?’ 걱정이 됩니다. 눈으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보니 산자락에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 모교이긴 하지만 산 중턱까지 건물이 들어서고 산과 ‘높이대결’이라도 할 듯이 솟아오른 모양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더군요. 이웃이나 자연과 잘 어울리는 넉넉하고 겸손한 서울대학교가 됐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숨 헐떡이며 산을 오르는 분들을 만나니 또 기분이 묘합니다. ‘어휴, 저 길을 언제 다 오르려나’ 걱정이 되면서도, 솔직히 나는 이제 쉬운 길만 남았다는 사실에 약간 홀가분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산을 내려와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며 근 2년 만에 맞는 여유를 만끽합니다. 한잔하는 틈을 타 방금 다녀온 관악산을 다시 올려다 봅니다. 그렇게 바라본 관악산은 또 그 나름대로 아름답습니다. 가까이에서 만나면 가까운대로, 멀리서 바라보면 또 먼 그대로…. 산은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선물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삼 많은 것을 받고 산다는 사실을 다시 느낀 주말이었습니다.
2005.11.14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