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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쓰는 편지] 국민연금특위에 대한 기대

  • 김근태재단2005.12.06

국회에 국민연금 특별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아직 속도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기대가 큽니다.

일단 본격적인 논의의 장이 만들어 졌다는 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물론 곧 속도도 낼 것이고, 강력한 동력도 만들어져야 하겠지요. 국회의원들과 각 정당 지도부의 고충은 이해가 됩니다.


민심의 바다를 항해할 수밖에 없는 의원과 지도부 입장에서 국민을 향해 ‘더 내고, 덜 받자’고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미래에 닥칠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고 요청하는 것은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곤혹스런 처지를 이해합니다. 정치는 숙명적으로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이 얼음처럼 냉정하다면, 미래는 안개처럼 막연합니다. 미래에 닥칠 ‘재앙’이 아무리 엄청난다 하더라도, 국민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달픔과 팍팍함을 고려해야 하는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당장에 닥친 현실을 먼저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연금개혁’은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안전한 내일’을 위해 연금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대해 국제사회가 예외 없이 동의하면서도 막상 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정에서 정권이 흔들린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우리 국회는 ‘국민적 토론’이라는 정공법을 받아 들였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대한민국 국회에 박수를 보냅니다. 차일피일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데 여야 지도부는 국민연금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토론을 시작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처음 보건복지부 일을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이 ‘과연 김근태가 국민연금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지켜보자’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더 내고 덜 받자’는 기존의 정부 입장과 달리 국민의 입장에서 속 시원한 해답을 내길 기대하는 분들, 뭔진 모르지만 ‘뾰족한 해법’을 던질 거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민스러웠습니다. ‘정부안’을 만든 분들과 함께 다른 대안은 없는지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가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결국 그만큼 국민의 세금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묘안’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을 하지 않으면 재앙적 미래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했습니다.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댓가는 컸습니다. 오랫동안 같은 생각을 하고 저를 지지해주던 상당히 많은 분들이 ‘실망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분들은 ‘그렇게 하면 정치인 김근태의 미래는 포기해야 한다’는 말로 겁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과거 군사정권이 국민을 속이고 ‘막대한 자금’을 손쉽게 끌어다 쓰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왜 그 책임을 다 짊어지려고 하느냐 또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흘러간 냇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미래의 재앙’이라는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는데 과거 군사정권 탓만 하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시한폭탄의 시계바늘을 최대한 뒤로 되돌리거나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국민연금 기금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지켜내고,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냉정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연금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의 말씀도 들었습니다. 첫단추부터 잘못 채운 연금제도 때문에 심각한 불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런 불신이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렇다고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최소한의 안전판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초고령사회’라는 핵폭탄을 맞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민연금 기금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사업을 하겠다’는 경제부처의 언급이 있었습니다. 또 적대적 M&A를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해 막겠다고 하는 경제부처 장관의 주장도 있었습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그리고 경영권 보장을 위해 경제부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는 할 수 있는 얘기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을 외면하는 발언이었습니다.


국민의 눈에는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민연금 기금을 갖다 쓰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 되어 안 된다, 더 큰 후유증이 남는다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지켜야하는 보건복지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편하게 돈을 끌어다 쓰기 위해 연금제도를 도입한 것이 아니냐는 국민적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내부 토론 및 합의 없이 국민설득과정 없이 마치 각본대로 기금 동원이 경제부처의 생각대로 결정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가 단호하게 나섰습니다. 경제부처에 대한 정책적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적 문제제기가 정치적인 해석이 보태지면서 한바탕 혼선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국회를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당조차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방향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메아리 없이 외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복잡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각 정당의 지도부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맨 몸으로 각 당을 방문해 지도부를 만나고 요청했습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 그리고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서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이대로는 못 간다.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보다 나은 안을 만들자’고 뜻을 모아 주었습니다.


복잡한 몇 구비의 고비를 넘어 마침내 연금제도에 대한 토론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연금제도에 대한 범국민적인 토론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국민적 토론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라는 기본 인프라를 이뤄낼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훨씬 중요합니다.


국제사회의 예를 보더라도 연금제도 개혁방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제대로 진행하고 합의를 이룬 나라는 예외 없이 사회통합을 이루고 더 큰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당장의 어려움과 혼란을 이겨내지 못하고 논쟁과 토론을 회피한 나라일수록 국민통합에 실패한 경우가 많습니다.


국회 특별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하고 마음 졸이고 있습니다. 국민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인 만큼 국회에서 충실한 논쟁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결론을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회 국민연금 특별위원회가 국민통합을 위한 소중한 첫걸음을 뗐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정말 바랍니다.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2005.12.6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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