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복지부 팀장 이상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팀제’로 조직을 바꾸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간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가 ‘저녁 한 끼 사겠다.’며 마련한 자리입니다.
간부들을 한꺼번에 만나니 가슴 깊은 곳에 묵직한 느낌이 차올랐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이 각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고, 갈등도 많았는데…. 장관인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 꼬~옥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올해 복지부 직원들 마음고생 많이 했습니다. 밖에서 보던 것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반듯하게 생각하는 공무원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음 든든했습니다. 어지간한 일은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격려하는 방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으며 마음을 싹 바꿨습니다. 사명감과 책임감은 기본이다,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몰아붙였습니다. ‘무능한 공직자는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며 모진 말도 했습니다. 새해 처음으로 국장급 간부들을 임명하면서 따뜻한 격려와 축하 대신 “이번 인사는 임시로 하는 것이다. 6개월 후에 업무성적을 재평가해 다시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했습니다.
직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전 직원이 모인 조회에서 “앞으로 복지부는 정책기획부서로 간다. 정책을 기획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복지부에 있을 수 없다. 집행업무를 담당할 다른 조직으로 가는 것이 옳다. 자원하면 내가 책임지고 보내주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말만 한 것이 아닙니다. 실제 지난 일 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행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인사를 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 한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파격도 파격이 아닌 것이 되더군요.
당연히 승진한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심지어 승진심사위원회를 통과한 직원을 직권으로 승진 보류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좌천 인사도 했고, 급기야 정무직에 해당하는 최고위층 간부진들에 대해 일괄사표를 받는 극약처방도 감행했습니다. 근무경력과 고시 출신인지 여부에 따라 승진을 안배하던 관행도 바꿔버렸습니다. 철저한 평가를 거쳐 ‘능력 있는 사람’ 위주로 승진 시켰습니다. 적당히 눌러앉아 있는 사람은 분명하게 가려냈습니다. 억지로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자동으로 승진하는 일은 없게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그동안 승진의 기준이던 행정고시와 공무원 채용시험 기수는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4~5년 일찍 들어온 사람이 늦게 들어온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게 이미 ‘뉴스’가 아닐 정도가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구보다 고마운 분들이 ‘일반직’ 직원들입니다. 사실, 이분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잔일치레를 묵묵히 해온 분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됐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행정고시에 합격해 젊은 나이에 사무관으로 온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고, 반평생 잔 일, 굳은 일 가리지 않고 일해 온 사람은 ‘정책기획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됐으니….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가로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설득했습니다. 과거에는 복지부가 집행업무를 많이 했기 때문에 ‘기획능력’이 없어도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집행업무가 대부분 지방으로 이양된 지금은 ‘기획능력’ 없이는 복지부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가슴엔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분들 가운데 상당수가 흉터를 안은 채로 함께 해주었습니다. 특히 6급 이하 직원들의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무원직장협의회’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장관의 방침이 칼날이 되어 날아올 것을 잘 알면서도 국민을 위해, 복지정책의 발전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받아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지난 일 년, 복지부는 유례없는 ‘인사혁명’을 치러냈습니다. 능력위주의 인사는 물론이고요, 팀장이 직접 팀원을 선발하고 팀원이 스스로 팀을 선택하는 ‘매칭 시스템’을 전면 도입해 정착 시켜내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인 평가체계 구축을 위한 성과관리제도(BSC 시스템) 도입, 전 직원에 대한 육성체계 등 일정한 성과를 이뤄냈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복지부가 이번에 시행한 ‘매칭 시스템’은 ‘신인사제도’의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민간기업에서도 성공한 예가 많지 않은 일입니다.
요즘 제가 하는 일은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는 일입니다. 중앙인사위원회를 찾아가 사무관, 과장, 국장을 만나 부탁하고, 민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성과가 있었습니다. 14명의 사무관이 복지부에 새로 배치를 받았고, 민간의 능력 있는 분들 다수가 복지부에서 함께 일하겠다고 결심해줬습니다. 7급 공채에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현업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복지부의 인재풀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조직 전체에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입니다. 맡은 정책분야에 대해 국내 최고의 권위자가 된다는 각오로 학습해야 합니다. 업무를 통해 학습하고, 근무시간에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팀장이 팀원 육성을 책임져야 합니다. 아직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지난 일 년 동안 진행한 하드웨어 혁신보다 몇 배 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지부 ‘인사혁명’은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5년만 꾸준히 계속하면 기대하는 수준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더라도 이 일은 계속돼야 합니다. 복지부 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곧 복지부의 능력이고, 복지부의 능력은 국민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공직사회의 눈높이와 국민의 눈높이는 아직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십시오.
저는 우리 공직자들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믿습니다. 그리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애정을 갖고 도와주고 격려해 주십시오. 훌륭한 공직자를 많이 키워내야 ‘능력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능력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좋은 나라가 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됩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2005.11.29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