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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일요일에 쓰는 편지] 한미FTA 협정문 공개 이틀째의 단상

  • 김근태재단2007.05.27

드디어 한미FTA 협정문이 공개되었다.


여전히 감추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 졸속협정이었는지 졸속비판이었는지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틀 동안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한미FTA협정은 매우 실망스럽다.


나는 지난 3월 한미FTA 졸속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협상단과 정부가 워낙 자신 있어 하기에 어느 정도 그럴싸한 협상을 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왕 시작했으니 제발 그래주길 바랬다. 협상이 체결되던 날 정부관료들이 줄지어 서서 한미FTA를 자랑스러워하기에 제발 그럴 수 있는 근거가 있길 바랬다. 그러나 미국 TPA시한을 어기면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올 듯이 난리를 치던 정부가 갑자기 그 시한을 연기하면서까지 체결한 한미FTA는 결국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실망을 거둘 수가 없다.


오늘 나는 매우 슬프고 화가 난다.


결과 공개로 드러난 협상력의 부족함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에게 정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동안에 단 한 번 사용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은 ‘세이프가드’ 문제에 대한 정부의 답변 태도는 특히 실망스럽다. 세이프가드를 업적으로 자랑할 땐 이런 조건 얘기를 안 하더니,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실은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고 변명을 하고 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더 이상 우리 협상팀을 믿기가 어렵다.


협상 중에는 별로 알려주지도 않고, 혹시 이러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면 알지도 못하면서 가만이나 있으라고 면박을 주었던 그들이었다. 더구나 협상과정의 문건들에 대해선 3년 동안 비밀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협상전략의 노출을 꺼린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데 결과가 이런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3년 후에도 오늘처럼 그들이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협상결과의 주권침해적 내용들은 더더욱 심각하다.


세간에서 우려했던 경제불평등 조약이라는 말이 연상될 정도이다. 한국경제시스템과 제도에 미국 영향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었다는 우려가 이곳저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기준을 갖지 못하고 왜 미국의 기준을 거의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툭하면 미국기준이 글로벌 기준이라고 우기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미국이 최강국이지만 미국이 세계는 아니다. 한국의 위상에 맞게 다른 나라 정도로만 해도 된다.


이번 한미FTA협정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의 협상력과 국력이 미국에 비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밀주의에는 국익이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비밀주의 외교협상과 통상협상은 불필요한 논란만 키울 뿐이다. 특히 국민경제 전체가 영향 받는 통상협상의 경우 그 준비 단계부터 철저하게 국민과 함께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왜 세계 최강의 통상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정부의 협상주도권이 한시적으로만 주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바꿔야한다. 정부의 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졸속비밀협상의 폐해와는 단절해야한다.


한미FTA는 개방과 쇄국의 문제가 아니다.


극단적 개방지상주의자, 개방올인파들은 일반국민과 온건한 개방주의자들을 때론 현혹하고 때론 모함하고 있다. 한미FTA를 주도하는 개방주의자들은 사실상 미국식 기준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한국은 한국의 기준을 만들어야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국가와 제대로 된 국민의 자세다. 선택된 개방과 적절한 국가의 산업정책 대응을 통해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왔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공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국민여러분의 각성이 필요하다.


한국의 기준은 우리 국민 스스로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27일

국회의원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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