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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고

[김근태 생각] 한국외대국제지역대학원 특강

  • 김근태재단2008.08.11

지난 7월 28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초정 특강이 있었습니다. 외대 대학원과 UN이 함께 진행하는 HUFS-UPEACE Dual Degree Programme의 인권 강의를 맏고 있는 Todd Howland 교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Todd 교수는 지난 92년, 김근태 이사장이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할 당시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아래는 강연록 초고 전문입니다. 이후 질의 응답 내용은 생략했습니다.


선거에 지고도 기분이 괜찮을 수는 없다. 낙선 인사를 며칠 하고는 그 후 집에 틀어박혀 ‘방콕’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싫었다.


‘쇠고기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도 ‘김근태 홈페이지’에는 여러 사람들이 방문했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분들도 있었고 또 미국 쇠고기 수입을 막아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피곤이 다 풀리지 않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삐짐이 계속 돼서인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오월 내내 계속되었다. 규모도 점점 커졌고, 중·고등학생 특히 여고생 여중생 유모차부대 등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게 느껴졌고…..


촛불소녀, “경제를 살린다는데, 우리 죽으면 무슨 소용?”이라는 말들이 주는 매력, 강렬한 호기심에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6월초부터 열심히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전율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헌법 제1조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부를 때 가슴 속에 있던 어떤 서러움이 북받치는 듯 했다. 목 메임 때문에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의 철학인 시장 만능주의, 정책 그리고 인사, 정치 그 모든 것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유연한 여성들, 특히 “촛불소녀”로 이름 붙여진 이중적 소수자들이 이끌고 나온 대중 집회에 의해서 권력은 야유 받고 왜소화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무능하고 특권적인 “강부자”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속절없이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안다. 오히려 역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우리 모두 예감하고 있다.


이후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선거, 전국적인 선거가 곧 있다면, 시민들은 그 선거를 통해서 무서운 심판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국정 운영에 반영되거나 강제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거는 없다. 2010년에야 지자제 선거가 있으니…..


문제의 심각함은 또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해서 “아니다”하고 심판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정통야당인 민주당이 약간의 반사이득은 얻지만, 신뢰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아니고.


또한 제도정치 전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의제제도, 오늘의 정당정치 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지 않다. 촛불집회가 근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문제가 과연 무엇인지도 아직 제대로 드러나고 있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우선 기존의 대의정치, 제도권정치, 정당정치에 대해서는 물론, 심지어 90년대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촛불집회는. 특히 시민 없는 시민운동, 후원자와 그들을 대리하고 대표하는 운동가들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운동을 권력적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런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거대담론은 사라졌고, 생활정치 즉 경제문제가 제일 중요하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협소한 인식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중심과 주변은 특정한 시간에는 특정하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역전될 수 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우리의 미래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촛불집회를 통해서 우리는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여기에 ‘관용’과 ‘연대’가 강력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촛불소녀, 유모차 부대도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주변으로 배치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촛불집회 과정에서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직접 나서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82cook.com” “배운여자들”이 바로 그렇게 했다.


무엇보다 촛불집회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물대포가 발사되는 그 현장에서 “온수! 온수!” “세탁비! 세탁비!”하는 외침에서 그리고 “명박산성”이라는 “이름붙이기”에 의해서 미래의 승패는 이미 판가름 나 버린 것이다.


예비군복을 입고 시위 대열에 참가하고 있던 한 남성이 대치선 맨 앞에 서 있던 어느 여성참여자에게 보호해주겠다면서 자리를 바꾸자고 하자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저 대신 선생님께서 고생하실 텐데. 그럴 수 없어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은 감동이었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이 거기 있었다. 우리에게 연대와 배려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말”이었다. 아니 그것은 “말씀”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감사하다. 부족한 내용은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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