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어도 토론합시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입니다. 올해는 좀 유별납니다. 숨이 턱턱 막힙니다. 앞으로도 한 달 넘게 이 더위와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섭니다.
여름은 저에게도 견디기 힘든 계절입니다. 특히 저와 함께 차를 타고 일하는 직원들에게 미안해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제가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고 에어컨 바람을 쐬면 몸이 으스스해지고 심하면 감기에 걸리기도 합니다. 체력은 약한 편이 아닌데(당장이라도 축구 한두 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수 있는 체력은 됩니다) 유독 호흡기 계통이 말썽입니다. 이젠 지나간 어두운 시대를 몸으로 맞서 버티느라 불가피하게 얻은 후유증인 셈이지요.
덕분에 저와 함께 차를 타고 일하는 친구들은 두 배 힘든 ‘여름나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에어컨 대신 자동차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다닙니다. 금방 와이셔츠가 땀으로 젖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미안해지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름을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더운 날씨일수록 짜증나는 일이 있더라도 힘내서 떨쳐내시길 기원합니다. ‘아자 아자’ 하면서 말입니다.
이번 여름에 저도 답답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민연금 문제입니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적 토론이 있었습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안을 만들고 국회에 제출한지도 벌써 3년이 다돼갑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 연금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개혁안에 대한 토론에는 쉽게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여야 지도부를 만나 ‘범국민 토론기구’를 구성하자고 제안하고 동의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인의 입장에서 국민에게 ‘더 내고 덜 받자’고 호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필요한 얘기라도 국민에게 부담을 더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가 쉽겠습니까? 국민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워 말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저도 정치인 출신인 만큼 각 당 지도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지금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선거를 앞두면 더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번에 하지 않으면 적어도 앞으로 3년 정도는 그런 말조차 꺼낼 수 없게 됩니다. 내년부터 08년 4월까지 지방자치제 선거와 대통령 선거 그리고 국회의원 선거가 줄지어 있습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국민에게 어려운 얘기를 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올해 5개월이 연금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물론,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각하다는 점이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공통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인기 없는 연금제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고, ‘인기 없는 줄 알면서도’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모두 재정안정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 최대의 고민입니다. 이 개혁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나라도 있고, 이뤄내지 못한 나라도 있습니다.
지난번 OECD 총회에서 확인한 일입니다만, 국민적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 연금개혁을 이뤄낸 나라가 국민통합을 이루고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대부분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의 양 측면에서 정체에 빠져 있습니다.
이제 성숙한 토론을 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잘못한 일은 솔직하게 고백하고, 어려운 사정은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직접 알려야 합니다. 각계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한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런 바탕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야만 국가전체와 국민 개개인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입니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양극화 문제 등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이슈’를 너무 많이 안고 있어서 더 덥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고, 노정갈등이 그렇습니다. 부동산대책과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사회적 긴장도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시원한 소나기 한줄기가 그립습니다. 한발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터놓고 대화하는 ‘신선한’ 토론의 광장을 만드는 건 어떨까요? 답답한 이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시원한 한줄기 소낙비 같은 토론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입니다.
2005.7.25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