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2022년 8월호 (통권 657호)
김근태기념도서관은 서울시 도봉구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수려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다. 북서측 등산객을 대상으로 하는 즐비한 식당가와 남동측의 아파트 단지로 빽빽한 주거지역 사이, 도시와 자연의 접점에 자리한다. 이러한 입지 특성상 지역주민의 방문뿐 아니라 곁을 지나는 다양한 연령대 등산객의 호기심 어린 발길 또한 잦다. 따라서 도서관 사용자를 위한 내부 공간만큼이나, 주변에 잠시 머무는 이들을 위한 외부 공간 조성과 그 사이 연계가 만들어내는 예기치 못한 공간적 가능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담았다. 이를 통해 안팎이 함께 어우러져 도시의 다양한 이벤트를 품어내는 내외부 연계의 소통체이자, 민주주의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고 김근태 의원을 기리며 우리가 걸어온 민주화 역사의 기록을 보관, 전시하고 공감할 수 있는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설계했다.
이형의 대지와 그리드
두 개 필지로 구성된 달팽이를 닮은 대지. 이곳에 잠재된 수많은 건축적 가능성을 불러내는 일은, 어느 하나 직교하는 구석이 없는 대지의 형상을 따르는 대신 단순한 그리드 체계를 취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건물의 골조와 외부 바닥의 마감 패턴부터 내부 공간에 이르기까지 적용된 그리드 체계는 안으로는 효율적 공간구조를 제공하고, 밖으로는 대지 경계와 만나 새로운 공간을 발굴해낸다. 이렇게 대지 전체에 걸쳐 체계화된 그리드의 사이 공간들을 정의하고 각각에 어울리는 특성과 재료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건축계획이 진행됐다. 이형의 대지와 조율하며 구축된 골조와 그 사이 남겨진 빈 공간은 ‘인필 시스템(infill system)’이라는 하나의 구축 방식으로 채웠다. 외부 입면은 벽돌, 유리, 목재, 창호, 문 등의 건축 재료와 요소로 채워진다. 내부는 서가, 책상, 벽과 같은 물리적 요소와 더불어 도서관 사용자의 다양한 표정과 행위로 그 ‘채워짐’을 완성한다. 이렇듯 그리드를 메우는 공간, 재료, 사람의 조합이 건물 내부와 외부에 다양한 장면을 그려낸다.
공간구성
콘크리트 그리드 체계 속 벽돌과 유리, 나무로 구성된 외부의 구축 방식은 내부에서 또한 적용된다. 하얀 벽과 기둥이 만들어내는 공간 시스템의 사이는 천장의 목재 루버, 하얀 벽을 닮은 흰색 서가 그리고 외부 풍경으로 채워져 도서관의 내부 경관을 완성한다. 내부의 여러 공간 중 특히 시선을 끄는 계단형 서가는 방문자의 주요 수직 동선인 동시에, 도서관의 ‘공간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책과 서가를 입체적으로 체험하며 교감하는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바닥을 딛고 서는 행위를 넘어, 앉고 만지며 경험함으로써 건축물과 사용자의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발생하는 이 공간은 저마다의 장서와 배치를 가진 층별 공간을 하나로 융합한다. 도서관 서측 한 켠 세 개층이 열린 형태로 자리한 김근태 추모서가는 사람의 손이 닿기 힘든 높은 곳까지 뻗어 있다. 비워짐으로 채워진 이 공간은 책만이 아닌 고 김근태 의원의 정신과 생각의 여운을 담아내며, 빛과 음영이 그리는 시간의 흐름을 도서관 내로 드리운다. 각 층의 다른 시점에서 만나게 되는 추모서가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김근태기념도서관임을 문득 일깨우는 이정표가 된다. 한편 도서관의 북측에 자리하는 전시 공간은 열람 공간과 지속적으로 소통, 순환하는 수직·수평적 연속성을 가진다. 전시실은 마치 백색의 도화지처럼 하나의 배경이 되어 고 김근태 의원의 다양한 기록물과 민주화 발자취를 가감 없이 담아내고 드러낸다.
확장되는 외부 공간
두 개의 필지에 하나로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두 건물 양 끝은 브리지형 통로로 연결된다. 연결되고 남은 사이의 외부 공간은 자연스레 두 공간의 중정으로 자리하고, 건물의 내부에 다시 외부를 품으며 겹겹의 공간과 깊이를 펼쳐낸다. 중정을 중심으로 순환하면서 내외부가 반복되는 공간구조는 너와 나, 서로를 확인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북한산 국립공원이 인접한 대상지는 서측으로는 도봉산과 북한산, 동측으로는 수락산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점이다. 자연을 풍경 삼아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담아낼 입체적 외부 공간이 도서관의 곳곳에 자리하며 때로는 자연을 향해, 때로는 도시를 향해 크고 작은 소통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북한산 국립공원을 향해 탁 트인 옥상정원은 주변 자연과의 교감을 이룬다. 도서관과 전시실을 잇는 2층의 외부 공간은 ‘추모루’로, 그 끝을 보여주지 않고 점층적으로 숨어드는 서측 입면의 끝단에서 전통 건축의 누각과 같은 쉼의 공간을 만들며 곁을 지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시와 소통한다.
외부에서 느껴지는 강직하면서도 다소 무뚝뚝한 표정의 조형과 재료의 이면, 주변을 받아들이고 소통하고자 열려 있는 내부의 공존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그 안에 자리한 따뜻한 의지를 기리고 담아낸다. (글 홍규선 / 진행 윤예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