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김근태 없게… 국가폭력 치료·재활의 공간 열렸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 입력 : 2013-06-25 21:59:15ㅣ수정 : 2013-06-25 21:59:15
ㆍ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가 25일 문을 열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성재덕관에 둥지를 튼 치유센터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고문 피해자들과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 등 국가공권력의 폭력으로 피해를 당한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26일은 ‘세계 고문 희생자의 날’이다.
치유센터는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설립됐다. 김 전 고문은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1985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해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12월30일 세상을 떠났다.
개소식에는 김 전 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 같은당 김용익·전순옥·한명숙·서기호·남윤인순 의원,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 전 고문의 고문 실화를 영화화한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과 배우 권해효씨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가 25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내 성재덕관 1층에 문을 열었다. 센터 앞에 김근태 전 의원을 추모하는 사진이 전시돼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치유센터 설립에 앞장선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대부분 정치사회적 상황 때문에 오랫동안 홀로 고통을 견뎌왔다”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 땅의 또 다른 ‘김근태들’이 외롭게 고통받다 쓰러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깨우침이 치유센터를 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소식은 김 전 고문의 고문 실화를 다룬 영화 <남영동 1985> 상영으로 시작됐다.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과 가족 100여명은 영화에서 잔인한 고문 장면이 나올 때마다 탄식하거나 눈물을 흘렸다. 칠성판 등이 등장할 때는 “도저히 못 보겠다”며 자리를 뜨거나 눈을 감는 이들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1년 인권의학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고문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970~1980년대 고문을 경험한 213명 중 163명(76.5%)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이 중 자살 시도는 24.4%에 달했다. 한 고문 피해자는 “감옥에서 나와 회사에 취직했지만 먹고살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할 때면 고문당했을 때가 되살아나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게 고문을 당해 간첩 누명을 쓰고 16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함주명씨(82)는 “지금도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들고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죽음 직전에 살리기를 몇 번씩 반복했다. 안 겪어본 사람은 알지 못하는 고통”이라고 말했다. 치유센터 설립추진위원인 함씨는 “매주 한 번씩 치유센터 프로그램에 참석해보니 심적으로 안정되는 걸 느낄 수 있다”며 “먹는 수면제의 양도 줄었다”고 말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