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시를 읽을 기분이 아니다. 아무리 잘못한다 해도 이렇게 엉망일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강부자 집단이 그토록 선망하는 미국, 그런데 그들은 그런 미국의 현 오바마 정부가 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747 경제공약이 실현 안되는 게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이라고 하면서도 그 뇌관에 불을 붙인 미국의 부시, 그런 부시보다도 더 부시스럽게 강부자들에게 모든 것을 몰아주고 있다. 감세, 규제완화는 물론 법과 질서지키기라는 이름으로 공안통치를 강화하는 등, 그야말로 역사를 역주행하고 있다. 또 재정 건전성이 무너졌다고 노무현 정부를 적자정권이라고 욕을 해댔던 저들이 이른바 이름도 생소한 수퍼 추경 28조를 들고 나왔다. 정말 후안무치 그 자체다.
그런데도, 아니 그 모든 수라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생활에 위기와 공포를 느끼고 있는 서민층과 자영업층은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는데, 이것이 여론조사에 잡히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수많은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를 대안적 리더쉽으로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 어떤 세력도 리더쉽이 되지 못했고, 또 스스로 리더쉽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해서 해결된 것은 거의 하나도 없는데,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경제위기 때문에 오히려 37%대로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가 정말 죄많은 인생이구나 개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신뢰를 잃어 버렸으면, 이렇게 죽을 쑤는데도 자그만 반사이익도 제대로 얻지 못한다 말인가.
어떤 여론조사 전문가의 주장에 의하면 국민의 분이 풀리기까지 최소 8년은 간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잃고 나서 대안세력으로 다시 인정받기까지 그만한 세월이 걸렸다는 것이다. 우리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선 지고, 총선도 지고, 선거에서 떨어진 우리는 국민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물론 다시 일어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진전한 반성과 회생이 있어야 한다.
김재균 의원에게 솔직히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메모를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김 의원으로부터 메모가 아니라 완성된 문장을 받았다. 가슴이 찌르르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그것을 소개하는 것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김 의원도 제도권 정치를 시작한지 제법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과정이 상당히 험난했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이런 시적 감수성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조용하지만 그렇게 강할 수가 있구나 하고 고개가 끄떡여 진다.
시를 언어의 정수라고 한다. 또한 시는 사상의 기저 혹은 사상의 고향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는 가슴에 간직할 만한 언어를 잃어버렸고, 기거할 만한 사상의 기저도 없다. 영혼의 노숙자만을 양산하는 사회로만 흐르고 있다.
화려하기는 하되 기교에만 기대는 시, 감동은 있으되 정작 우리 사회 삶의 질곡에 대해서는 눈감은 시로 이름만을 드높이고자 하는 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진정성과 인간 본연의 자세에 뿌리를 두지 못하는 시들에는 남도의 지리산이나 광주의 무등산과 같은 어떤 체온이 전달되지 않는다.
울림과 공감을 잃어버린 오늘의 정치현실, 그리고 그런 한국사회에서 시가 쇠하고 시인들이 설 자리를 잃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된다.
바다로 떠난 은어 떼들이 자신이 태어난 강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오는 것처럼 정신세계에서 시는 인간이 도달해야 할 강물과도 같은 존재다.
시집『장수풍뎅이를 만나다』에는 어둠속에 웅크리고 고뇌하는 민중들의 삶이 있다. 차가운 대기를 뚫고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이 보여주는 희망에 대한 기상이 녹아 있다.
생명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일깨우는 모과 향과도 같은 시, 또한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결속과 다짐을 보여주는 시에는 지난 8년 동안 심연에서 길어 올린 듯한 냄새가 나고 있다. 김 시인의 시에서는 진정함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가슴에 번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느껴진다.
오늘 암울한 경제상황과 정치적 현실 한 가운데 서서 김 시인은 ‘긴장해라. 정신차려라. 그리고 감내해라.’라고 낮은 목소리지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 살아있는 영혼을 간직하고 있는 시인과 정치적 동지로서 함께 할 수 있어 든든하다. 고생 많으셨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