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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김근태 생각] 한반도 위기와 민주세력의 책임

  • 김근태재단2009.11.04

비전한반도포럼과 5ㆍ18연구소가 주최하고 김대중 평화센터가 후원하는 ‘행동하는 양심-김대중 사상 대강좌’에서 배포된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강연문입니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11월 3일. 전남대 용봉홀에서 한반도 위기와 민주세력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강좌의 첫 번째 강의를 하였습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한반도 위기와 민주세력의 책임*

                                                                                                                           김 근 태

1. 빈자리가 크다

상당히 추운 날씨다. 가을은 책 읽는 계절이라고 하지만, 올 가을은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을 모으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차가운 바람이 옷소매를 뚫고 들어오는 이 가을 녘에 서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떠나가신 것을 생각해 본다.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2. 절룩거리는 DJ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직후, 그 분의 일기가 소책자로 제작되어 배포되었다. 그 작은 책자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71년 국회의원 선거 시 박 정권의 살해음모로 트럭에 치어 다진 허벅지 관절이 매우 불편해져서 김성윤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짤막한 문장이었다.

가슴이 짜안해졌다. 칼로 베인 것처럼 아팠다.

71년도 선거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김대중 후보를 살해하려는 음모가 있었다. 박정희 권력 측의 공작이었다. 아마도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깊게 개입되어 있었을 것이다. 두 명의 경호원이 목숨을 잃었고, DJ 후보는 다리를 크게 다쳤다. 그 후 평생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다. 절룩거리게 되었다.

95년인가 96년인가에 김대중 총재는 미국 아무개 대학병원에 건너가서 수술을 받기로 하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반대를 했다. 조병옥 박사가 미국 병원에 가서 수술 받다가 돌아 가셨다. 우리 국민에게 큰 충격이었다.

90년대는 개명한 세상이라 50년대와 다르다. 하지만, 마음 놓을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김 총재께서 결정해서 안 가신 것이지만, 나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만일 미국에 건너가서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었다면, 일부 기득권 언론의 야유대상이 됐던 저 절룩거림, 그 허벅지 아픔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평생을…. 이제 영면하셨으니, 그 아픔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3. DJ는 오늘을 3대 위기라고 규정,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준엄하게 선언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 우리 현상을 3대 위기라고 규정하였다. 민주위기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라고 선언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악의 편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더 밀고 나가셨다. 이의 제기를 하고 연대하고, 집회·시위에 참여하고 할 것이 많다. 그러나 만일 정 할 것이 없다면 담벼락에 대고 이명박 정권의 억압과 탄압에 항의하라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라고 하셨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라는 말씀이셨다.

4. 그러나 다소 혼란스럽다.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편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한 시민 500만 명이 있다. 2008년 여름,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촛불시민의 강력한 힘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친 서민 행보라는 몇 가지 이벤트가 있다. 중도실용 노선을 걸어가겠다는 주장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40%~50%까지 올라가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혼란스럽다.

작년 이 맘 때, 또 다른 IMF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공포심이 우리를 짓눌렀다. 그러나 지금 공포심은 대폭 약화됐다. 80%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 서민 행보에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경제를 잘 풀어 나가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그 속에 거품처럼 쌓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발 우리 좀 살려 달라. 이 팍팍한 삶의 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 달라는 마음이, 그런 마음이 촛불시민으로 나타나고, 40%~50% 지지도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촛불시민과 높은 국정지지도, 언뜻 다르게 보이는 이 둘은 시민과 국민의 간절한 마음 속에서는 하나이다. 누구든 잘해 달라는 것이다.

5. 분노의 조직화, 저강도 전략의 숨은 의도를 드러내야.

이명박 정권은 부익부 빈익빈 정치를 그냥 밀고 나가는 강자, 부자만을 위하는 정권이다. 더 이상의 양극화는 국민을 대대적으로 분열시켜 대립·갈등·투쟁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걱정과 우려에 대해 한나라당 정권은 수월성 이론과 성장의 과실이 흘러내린다는‘흘러내림(Trickle Down)’이론을 갖고 정당화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용산참사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권력은 서민과 노동자를 중산층과 분리 고립시킨다. 배제해서 왕따시키고 억압하고 탄압한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검찰과 일부 기득권 언론 권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독대 보고를 받고 있는 국정원과 기무사는 정치권력의 모든 대치전선에 전면적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다만 그것을 감추려 하고 있고, 꼬리가 들켜도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다.

이른바 저강도 전략을 펴서,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김제동, 손석희가 중도하차한 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옛날 같이, 미운털 박히면 구속되기도 하던데 그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생활에 쫓기고 있고, 억울하지만 하는 수 없지 않은가하며 사람들은 지나가거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야기하고 만다.

미네르바는 구속되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실형은 받지 않고, 또 폭행이나 고문도 받지 않았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억압하고, 탄압한다. 그래서 분노가 잘 조직되지 않는다. 분노가 폭발했다가도 이 정권의 저강도 전략과 친 서민 행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저들의 저강도 전략은 이미 미국 부시 정권이 사용했던 수법이다. 그것은 국민의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효과적으로 비판자, 반대 세력에게 집중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분노와 항의의 폭 넓은 연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교활한 저강도 전략을 국민에게 보여 드려야 한다. 그것은 민간독재의 전형적인 수법임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6. 10·28 재·보궐 선거는?

10·28 재·보궐 선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 10·28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당의 무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다. 바닥 민심은 빈익빈 부익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맹렬하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사이득을 민주당이 얻게 되었다.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개혁 세력에 대해 기대는 있다. 그러나 아직 믿음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당의 온전한 승리는 아니다. 만일 지금 이대로 가게 되면 앞으로의 대치전선에서 성공하는 것이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내년 지자제 선거에서 확고한 승리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단해야 한다.

7. 민주당의 혁신, 민주 개혁세력의 혁신을 밀고 나가야 한다.

혁신에 기초한 통합을 준비하고 성공시켜야 한다.

①. 투쟁성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미디어관계법 개정은 절차적 위법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른바 조·중·동 방송을 만들기 위한 미디어관계법은 재논의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절차다. “오프사이드이지만, 골인은 유효하다.”는 분노와 야유가 더 이상 번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화주의도 아니다.

3천 페이지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검찰에게 속수무책인 법원은 이미 국민의 사법부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법부는 더욱 아니다. 그것은 한낱 권력의 시녀일 뿐이다.

우리는 국민의 눈물이 있는 곳, 그 곳에서 투쟁의 깃발을 다시 올려야 한다.

②. 더욱 개혁적이어야 한다.

더 이상의 양극화는 안 된다. 이대로 가면 국민을 분열시켜 격렬하게 대립하게 될 것이다. 블레어 식이 아니라 오바마 식으로 개혁적으로 가야 한다. 민주적 시장경제와 토빈세 도입을 브라질처럼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

이제 ‘경제·사회 시스템은 미국식이 아니라 스웨덴 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결정해야 한다.

③.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자기 몫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합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이번 재선거에서 노력했지만 후보 단일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신뢰도 두텁게 만들지 못했다. 우리의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8. 행동하는 양심으로 반성하고 전진하자.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고, 하토야마가 일본 총리이다. 만일 정권 재창출에 성공해 민주 개혁세력이 지금 집권하고 있다면 한반도 분단체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동아시아 안보질서인 신 냉전체제를 평화협력 체제로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반도는 증오와 대립의 변방이 아니고,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우리 민주개혁 세력은 깊이 되돌아 봐야 한다.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기에 우리는 왜 국민의 마음을 잃어 버렸는가? 우리가 잘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잘 못한 정치는 무엇이고, 또 정책은 무엇인가를 검토하고 정리해야 한다.

잘한 것은 계승하고, 한계나 오류는 고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인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9.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열정이다.

지난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침략자인 이등박문을 살해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내 친구 한 사람은 안중근 의사에 대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30대 초반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얼마나 쓸쓸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눈물이 그냥 왈칵 쏟아지더라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생각난다.

호남이 없었으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광주시민의 가슴에 새롭고 뜨거운 열정이 모아지면 우리는 3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80년대 초에 민청련 활동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켰던 것처럼, 광주시민이 함께 해 주신다면 제가 앞장서겠다. 광주시민 여러분과 함께라면 기꺼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투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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