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안’을 토론하자!
결국, 60명이 넘는 노동자가 구속되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권력의 횡포요, 지나친 탄압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성, 반민중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연대’에서 구속자들을 면회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구속된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은 외롭지만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공장점거 막바지에 권력이 의료진 방문을 막고, 노동자에 대한 물과 식량공급을 차단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비인도주의적 공권력개입에 대해 더 강력하게 비판하고 규탄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짙게 남아있다.
아울러 솔직하게 고백할 게 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 대한 질책이다.
이번 과정에서 쌍용차 현장을 두 번 방문했다. 첫 번째 방문은 공장점거 투쟁이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그 즈음에는 이른바 미디어 관계법 날치기가 진행 중이어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 노조가 주장하고 있었던 ‘총고용 보장,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주장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내심 부담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두 번째 방문은 노사합의로 점거가 풀리기 전날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최영희, 김상희 의원 등과 함께 차단 고립되었다. 이른바 ‘구사대’가 저지하고, 경찰이 ‘보호조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막고 나선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공적자금 투입’을 요청하는 노조의 주장이 정말로 이해가 된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사회에서 해고는 거의 순식간에 노동자 자신과 그 가족을 허허벌판으로 내모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난 정부시절, 재무적 능력을 중시하고 산업적 능력은 중시하지 않아서 상하이자동차에 제1대 주주자리와 경영권을 넘겨준 것은 잘못이었다. 그러니 그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건 옳은 말이다. 그 불찰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짊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전세계경제위기로 확산되고, 그 여파로 자동차 기업 GM과 크라이슬러 등이 구조조정 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물론,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한국자동차 산업에 대한 산업정책을 준비하지 않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또, 상하이 자동차로 넘긴 정부의 책임도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렇다고 그런 책임을 추궁한다는 의미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요구가 합리적인 것일까? 실제적이면서도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불가피한 경영상의 이유로 현직에서의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해고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대신 해고된 노동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적극적 노동정책을 촉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보다 폭넓은 자본조달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대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공감대 확산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쌍용차 문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요구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뭘까?
쌍용차 노동자 60명이 구속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고용 유연성과 고용 안정성에 대한 요구는 모두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서로 상충하는 요구를 통합하는 사회적 차원의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쌍용차가 점점 더 큰 쓰나미가 되어 우리 사회를 덮쳐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서둘러 대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