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02._프레시안
[인터뷰] 허영 당선자 “기본소득 입법화로 ‘삶의 뉴딜’ 이루겠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통합의 밀알’을 자처하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던 2007년 6월 12일, 기자회견장 모퉁이에서 붉어진 눈을 감추려 연신 고개를 외로 꼬던 30대 젊은 보좌관이 50세 국회의원으로 돌아왔다.
민주당 계열 의원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던 척박한 춘천(춘천·철원·화천·양구갑)에서 12년 동안 바닥을 다진 더불어민주당 허영 당선자다. 김근태 의장 사후 최문순 강원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어도 그는 여전히 김 의장을 “정치적 아버지”라고 부른다.
앞서 이인영 원내대표, 유은혜 교육부총리, 기동민 의원 등이 정치적 기반을 굳힌 데다 허영, 김원이(전남 목포), 박상혁(경기 김포을) 당선자 등이 21대 총선을 통해 속속 원내로 진입하면서 국회에 ‘김근태 정신’을 뿌리내릴만한 여건은 더 두터워졌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은 이미 민주당 내 최대 모임이다.
허 당선자에게 김근태 정신의 현재적 의미를 물었더니 “한반도 평화와 경제민주화”라고 답했다. 그 연장선에서 “기본소득 법제화”를 자신의 의정 목표로 여러 차례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경제 대공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국민들에게 촘촘하고 든든한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70년생으로 ’86세대’의 막내벌인 허 당선자는 “86세대가 새로운 시대 담론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70년대 이후 세대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며 정치 세대교체를 준비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시 정무수석을 지낸 허 당선자는 박원순 시장과도 인연이 깊어 ‘박원순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박 시장이) 암울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서울시장을 하며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했던 여러 인물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줬다”며 “그 인물들이 청와대 수석 등 여러 일을 맡아 문재인 정부가 빨리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20년이 되어 가는 정치 경력이어도 신인은 신인. 큰 목표보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지역(춘천) 일에 매진하고 싶다”며 자세를 낮췄다. 그는 “춘천을 호수국가정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국가공원조성에관한법률을 추진해서 다양한 도시와 지자체들이 그린뉴딜, 그린SOC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김근태 의장에게 배운 대로, 정치가 말과 메시지로 이뤄진다고 하지만 그것이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되고 그 속에서 희망의 리더십이 채워지기를 바란다”며 “비판을 하더라도 논리와 근거를 갖춘 절제된 언어로 공감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거친 말로 유명세를 탔던 그의 상대 김진태 의원과는 다른 길이다.
다음은 허영 당선자 인터뷰 일문일답.
▲ 허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당선자 ⓒ프레시안(최형락)
“이광재‧최문순이 뿌린 강원도 변화의 씨앗, 이제 균형추는 만들어졌다”
프레시안 : 70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이 춘천에서 당선자를 냈다. 3선에 도전하는 김진태 의원을 상대로 한 쉽지 않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은?
허영 : 솔직히 제가 잘했다기보다 김진태 의원이 너무 못했기 때문이다. 김진태라는 정치인이 ‘보수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춘천 선거가 전국적인 관심과 화제의 지역이 됐다. 김진태로 상징되는 보수 정치의 아젠더, 선거 전략, 유권자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한 평가가 승리의 주된 요인이라고 본다. 김 의원은 과거에 얽매여서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거 와중에도 사회주의, 공산당 프레임 등 50~60년 전의 구태를 들고 나왔다. 보수 진영의 전국적인 현상을 춘천에서 명확히 심판했다고 생각한다.
또 8년 간 김진태 의원에게 춘천을 맡겨 놨더니 당권 도전 등 사적 욕심만 추구하는 정치행보를 보였을 뿐 지역 현안을 내팽개쳤다. 강원도 도청소재지가 춘천이다. 원주, 강릉 같은 강원도의 다른 큰 도시들은 발전하는데 춘천은 경제가 침체되고 뒤쳐졌다. 유권자들의 지역 발전 요구가 집권여당 후보를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김 의원이 걸어온 이력이나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자는 요구가 있었다. 집권여당 후보로서의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고, 12년 동안 지역을 떠나지 않고 탄탄히 준비해 온 허영을 선택하자는 민심의 결과라고 본다.코로나19 때문에 여당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주려 한 이번 선거의 특수성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시스템에 대한 칭찬이 있을 정도로 문재인 정부의 대응에 국민들이 안정감을 느낀 게 총선 승리에 크게 작용했다.
프레시안 : 전국적으로는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압승을 거뒀지만, 강원도는 여전히 민주당의 약세다(※강원도 지역구 8석 중 민주당 3석, 미래통합당 4석, 무소속 1석). 전통적으로 영남권과 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였던 곳인데, 이번 선거를 강원도 정치지형이 변화하는 시발점으로 봐도 될까?
허영 : 강원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변화의 싹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당선됐고, 최문순 도지사가 내리 3선 했다. 그렇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선 구도를 바꿔내지 못했다. 큰 인물에 대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민주당 도지사들이 지역에서 섬기는 리더십을 통해 인정받은 점이 이번 총선으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국경과 인접한 강원도는 안보 불안 심리가 강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인구 비율도 어르신들이 많다. 국회의원 선거는 그런 프레임이 작용되는 영역이라 보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광재·최문순 지사를 겪으면서 이제는 민주당에도 맡길 만하다는 평가가 작동하는 것 같다. 강원도 전체 의석 8석 중 춘천, 원주권에서 민주당이 3석을 얻어 균형추는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김근태 정신의 핵심 가치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민주화”
프레시안 : 정치 입문 과정부터 고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불가분의 관계다. 허 당선자가 내면화한 김근태 정신의 핵심은?
허영 : 김근태 의장은 저에게 정치적 아버지다. 그분에게 배운 정치 철학과 원칙은 제가 정치하는데 있어 늘 기준과 지표가 된다. “정치는 희망을 주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김 의장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희망은 힘이 세다’는 철학으로 혹독한 고문을 견뎌내셨다. ‘민주주의자 김근태’라고 국민들이 붙여준 호칭처럼, 원내대표와 당 의장 시절 정당과 국회에 민주적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선언을 한 일이 우리 정치를 보다 깨끗하게 만들었다. 김근태의 양심선언 전과 후 정치자금 영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것이다. 김 의장의 정치를 보고 배우면서 저 역시 정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희망의 리더십이어야 한다고 되새겨왔다.
프레시안 : 김근태 정신을 공유한 이들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집단적 목표가 있다면?
허영 : 김 의장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계파적 의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많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는 민평련을 가치연대라고는 할 수 있겠다. 핵심 가치는 한반도 평화와 경제민주화다. 이 두 가지 가치는 김 의장이 평생의 정치적 사명으로 가졌던 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분명하게 보여주는 정치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평화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로 경제 대공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경제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국민들에게 촘촘하고 든든한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민평련 의원들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는 선두에 있다고 생각한다. 민평련이 깨지면 우리 당의 정체성도 전반적으로 깨질 가능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민평련이 가치적 구심점은 있다고 본다. 며칠 전 민평련 당선자 27명이 모여서 마석모란 공원 참배하기도 했는데, 민평련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