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보도] 국민과 정직·진실의 길 가려 했던 김근태… 이젠 국민이 ‘응답하라 2012’

  • 김근태재단2012.11.16


김근태(1947~2011)의 묘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나는 정직과 진실이 이르는 길을 국민과 함께 가고 싶다.” 현재의 소망형으로 나타낸 이 구절은 김근태의 삶을 압축한 것이다. 김근태의 마지막 시기를 함께한 저자는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고비 고비에서 결단한 ‘정직과 진실’로의 길을 담담하게 정리하고 있다.

김근태의 길은 폭력과 죽음이 도사린 곳이었다. 1985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던 김근태는 그해 9월 한달 동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10회에 걸쳐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는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에 다가와” 있던 그때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뇌까렸다. 강한 정신력으로 암담한 시절과 싸워나갔다. 협박과 회유에도 입 다물지 않고 세상에 잔인한 인권 탄압을 폭로했다. 김근태는 독재 시절 26회 체포되고, 5년6개월에 걸쳐 두 차례 투옥됐다. 김근태가 겪은 고문 사건을 정리한 책 1장은 ‘민주주의의 전선에서 우리는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가 제목이다. 김근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도덕한 정권, 정의롭지 못한 법정, 권력의 시녀 검찰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에 눈감아 애써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우리의 무관심과 싸워야 한다.”

김근태의 길은 비주류의 것이었다. 민주화 이후 정치인이 되고, 장관이 되고, 당의장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비주류는 민주주의였다. 1997년 김근태는 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제를 주장했다. ‘동교동’의 각별한 애정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당시 국민회의 동교동계의 ‘체육관 후보 추대’론이 힘을 받던 때 그는 성역과도 같았던 ‘DJ 1인 보스체제’를 비판했다. 저자는 “민주정치는 총재나 보스의 제왕적 결단으로 운영되기보다는 민주적 토론과 합의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2002년 3월3일, 민주당 국민 경선이 시작되기 전 김근태는 “2년 전 최고위원 경선 때 실세인 권노갑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시민들은 양심고백에 박수를 보냈지만, 당내에서는 “혼자만 깨끗한 척한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자살행위였다. 첫 경선장에서 김근태와 눈을 마주치는 이들이 없었다. 그는 정권 재창출을 염원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한동안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김근태는 주류가 되고나서도 계속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때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다. 친노 인사들이 여당이 대통령을 난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파병 찬성 당론을 강요, 압박했다. 시련이었다. 김근태는 파병 반대를 관철시키지 못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수개월간 자책감에 빠져 지냈다.



김근태는 외환위기 이후 무차별적으로 들어온 신자유주의에도 치열하게 저항했다. 김근태가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사퇴한 지 한 달째 되던 2007년 3월, 한·미 FTA 농성장을 방문해 농성 참여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6년 10월은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에 긴장 국면이 조성되던 때다. 여야 할 것 없이 북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갈 즈음 개성 방문을 결행했다. 개성에서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평화가 유지되어야 경제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분단국가이자 정전협정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는 ‘평화가 곧 밥’입니다. 평화가 깨지면 경제가 흔들립니다. 밥그릇이 깨지는 것입니다.”

비주류와 민주주의의 길은 시대의 물줄기를 앞으로 이끌어내는 진보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뒤늦게야 올바랐음을 인정받는 지난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이 그랬다. 저자는 “그의 전선은 외환 위기 이후 ‘개혁’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무차별적으로 들어온 신자유주의였다”고 말한다. ‘우리 안’의 반대와 저항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경쟁과 개방을 주장했다.

– 중 략 –

부제는 ‘민주주의 김근태의 시대정신’이다. 김근태는 2012년 ‘제2차 민주대연합’을 제안하면서 ‘반신자유주의 국가 시스템 구축’을 주장했다. 이것이 김근태의 시대정신이다. 김근태는 “무엇보다 먼저 민주정부 10년을 성찰하고 반성의 고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득권 포기도 주장했다. 그래서 김근태의 시대정신은 살아 있을 때 환영받지 못했다. 죽어서야 ‘야권’의 추앙 대상이 됐다. 야권 대선 후보들은 12일 김근태가 당한 고문을 극화한 <남영동 1985> 시사회장을 찾아 영화를 보며 김근태를 기렸다. 김근태의 ‘시대정신’과 생애의 핵심을 간결하게 담은 이 책의 주제에 화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림과 추모이고, ‘2012년을 점령하라’는 김근태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일 터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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