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안을 접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도봉구에 “가인(佳人)”초등학교라는 곳이 있다.
지역 주민 대부분께서도 이게 무슨 말인지, 왜 그렇게 이름 지었는지 잘 모른다.
또 너무 어려운 말이어서 알고 싶은 호기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지난 15여 년 동안 이 곳 도봉구에는 학교가 많이 지어졌다.
나는 사명감을 갖고 여기 창동에 사셨던 독립운동가들의 성함을 학교 이름으로 짓도록 노력했지만 성공한 것은 단 하나 “가인” 초등학교뿐이었다. 그것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본명도 아닌 ‘호’를 따서 지은 누구도 잘 알 수 없는 이름일 뿐이었다.
우선 이곳을 관할하는 교육장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일제 치하 1930년대 중,후반기 군국주의가 노골화되고, 민족독립운동을 하는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수도였던 경성의 고등계 형사들의 감시의 눈초리를 벗어나고자 이사해 온 곳이 여기 창동이었다. 경원선 출발역인 청량리에서 한 정거장인 이곳은 경성이 아니면서도 정보를 곧 전해들을 수 있는 안성맞춤 지역이었다.
한때는 도산 안창호, 위당 정인보, 임꺽정의 홍명희, 조선 무용가 최승희, 김병로 선생 등이 이곳에 모여 사셨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이곳 노인 어르신 일부에게만 알려져 있었다. 미국이나 서양처럼 사람 이름을 따서 학교, 거리, 건물 이름을 짓는 것에 익숙한 문화가 아닌데다 서양처럼 사람이름을 따서 기념하는 북한이 의식되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안창호” 고등학교, “정인보”중학교라고 하면 전국의 많은 사람들의 귀에 쏘옥 들어갈 것이고, 재학생들에게도 그런 이름 자체만으로도 큰 가르침이 될 것이고,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권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말한 학생인권조례(안)과 그에 대한 교육부, 교육관료, 일부교사 그리고 오늘 한국의 특권적 지배계층의 반응을 보면서 지난 일이 떠오른다.
우선 나는 전혀 놀라지 않고 있다. 교육도 ‘시장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공교육, 사교육에 있어서의 우월적 위치를 계속 대를 이어 유지하려고 한다. 이들로서는 기본적으로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고 ‘훈육’되어야 할 ‘객체’로 규정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체벌을 금지하고 두발자유를 보장받는 교육의 주체로서 학생들이 인정받는 순간 혹시 권위주의적 시장주의 교육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이기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욕망 충족과 더불어 소통, 협력, 연대 없이는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교육과정은 이 상호 충돌할 수 있는 근원적 욕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조정하고 상승시킬 수 있는지, 적어도 최악의 대립과 불행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인지 협동교육을 통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학생들은 교육과정에서 사회와 국가의 도움을 받고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도움을 받는다해서 학생 개개인의 주체성이 훼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어떻게 굴욕적이고 치욕적인 체벌을 이른바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수 있겠는가. 또 의존적인 계층의 표시로 두발 규격화에 복종해야 한다고 우길 수 있겠는가.
시행령을 고쳐서 학생인권조례를 사실상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교육부는 더 이상 어깃장을 놓지 말아야한다. 그것은 교육의 선진화, 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를 방해하는 잘못된 권위주의적 선택이다.
2010년 10월 김근태